형식과 내용의 조화

형식과 내용의 조화
-제10회 현동 사공홍주 선생의 개인전을 맞이하며 ……-

현동玄同 사공홍주司空弘周 선생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남을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선생은 나에게 항상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스스로의 문제를 극복하고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그 열정에 놀랐고, 어느 한 순간도 나태하지 않고 자신을 담금질하는 그 성실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무엇보다도 나이라든가 신분에 상관없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든 배움을 청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은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열정과 성실성, 그리고 열린 마음을 보고나서야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 뒤에 펼쳐진 현동 선생의 강력한 아우라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현동 선생의 작품을 보노라면 ‘서여기인書如其人이요, 화여기인畵如其人’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음을 느끼게 된다. 항상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인가 하면 잠시도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유장悠長한 흐름을 이어가는 큰 강물처럼 결코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문득 돌아보면 언제 이만큼 나아갔나 싶을 정도로 넓어지고 또 깊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표제에서도 소개된 것처럼 이번 전시의 주제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다. 이는 논어 의 “바탕이 문채를 압도하면 거칠고 투박하며, 문채가 바탕을 압도하면 형식적이고 도식화되어 버리므로 바탕과 문채가 고루 어우러진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유학의 중요 이념이기도 하다. 이것을 문인화에 적용하면 ‘문’은 형식이고 소재이며 기법상의 예술미를 가리키는 것이고, ‘질’은 내용이고 주제이며 정신상의 본체미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과 질이 고루 어우러진다는 것은 예술, 특히 문인화의 궁극적 이상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문인화는 사실 형식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표현기법이나 소재에 치중하는 경향과 이와 반대로 형식을 무시하고 내면의 정신성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으로 양분되어 있다. 어느 쪽이든 이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온전한 문인화의 예술정신을 발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문인화의 예술성은 단순히 미적 표현으로서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진眞,선善,미美가 하나의 작품 속에 합일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문인화의 예술적 특성을 중화미中和美, 여백미餘白美, 의경미意境美 등으로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미적 가치는 항상 형식과 내용, 문과 질, 문채와 바탕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전제로 요구하게 되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곧 어그러지고 만다. 작가 스스로도 이번 작품들은 문인화의 내면적 사상 체계를 연구하고 그 정신적 바탕을 이해하면서 빚게 된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표현기법과 현대적인 감각의 어우러짐과 자연스러우면서도 개성적인 내면세계를 세련되게 펼쳐 보이는 '새길 트기'의 은밀한 행진은 기대치를 다시 한번 높여준다고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현동 선생의 근작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러한 균형과 조화에 많은 힘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필선은 거친 듯 하면서도 결코 투박하지 않고, 세련된 듯 하면서도 속되지 않으며, 기법상으로도 화목의 정수를 취하되 지나치게 추상화하여 형形을 어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구도상으로는 평면과 입면, 원근을 자유로이 풀어놓으면서도 법식을 벗어남이 없다. 또 화선지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황토로 바탕 문양을 넣음으로써 시각적인 단조로움과 식상함을 벗어나되 그것이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돋보이게 한다. 마치 화려하지 않으나 초라하지도 않고, 담박하면서도 오색五色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군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작품의 수도 많지 않고 주로 소품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자신의 예술성을 원숙圓熟하게 표현하는 절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동 선생은 어느덧 큰 강물이 되어 자신만의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결코 여기에 머무르거나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경지를 보여 줄 것임을 알기에 앞으로 선생이 또 어떤 변화를 시도할지 미리부터 사뭇 기대가 된다.

2008년 7월
보현산普賢山 소담재素澹齋에서 황지원黃志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