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사공홍주의 작품세계

작품과 재료는 사실상 둘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재료 없이는 작품이 불가능하고, 작품 역시 재료에 따라 그 작품의 품성을 달리한다. 그러나 작품의 품성은 그 재료에만 달려있지 않고 작품 자체의 본 모습에 달려 있다. 그러한 작품 자체의 본 모습은 원래 하나가 아니고 전체이나, 그 전체는 작품 자체의 본모습에서부터 내면가지를 다 포함한다. 작품 자체의 내면은 일차적으로 틀로서의 구도에서 이루어지고, 그 구도가 구도로서만 있다면, 작품의 생동성을 상실하게 되므로 틀로서의 구도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성을 지녀야 한다. 이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성을 작품 내에 보듬어 내기 위해서는 또한 작품의 정신성을 가꾸어 내어야 한다. 더 나아가 작품의 내면에 작가의 이념이 큰 줄기로서 각색되어 있지 아니하면, 작품은 공중으로 뜨고 만다. 길거리의 작품으로 전락하고 말게된다.

이처럼 작품 자체의 본 모습에서부터 내면가지를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내어 주는 것이 작품의 본연이고, 그러한 본연이 작품의 예술성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예술성이란 처음부터 재료와도 함게 하면서 작품을 작품되게 하는 작품의 품성과 인간존재의 심미적 구조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할 수 있고 도라고도 할 수 있으나, 통칭해서 근원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근원성이 근원성 자체로 존재한다면 그 무매개성으로 인해 무의미하지만, 작품과 관계할 때 비로서 그 근원승은 작품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을 얻게하고, 그 정신성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작품을 마침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재료로서 시작되었으나, 재료의 성격은 일단 사라지게 되고, 작품의 품성이 작품의 본연인 예술의 자리에 들어서게 되어 작품의 근원으로서 예술성이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동 선생의 작품을 가다듬어 볼 수가 있다. 선생의 6번 개인전을 3시기로 나눌 수 있다면, 먼저 88년과 92년의 개인전에서 선생은 처음으로 공예나 동양화기법에서 사용하는 아교와 파라핀 등의 재료를 이용하면서도 그 재료적 성격을 지양시킴으로써 전통적 표현기법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 개인전에서의 의미는 그가 학동으로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루어진다. 선생은 한문의 정신을 가지고 서예에 입문하면서 서예의 표현기법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 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서예의 이(理)와 묘(妙)를 서예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선생은 서예의 예술정신을 가지고 인간 삶을 위한 경서(經書)에 심취함으로써 평면적 세계에 대한 시각으로부터 새로운 입체적 공간세계를 구상하게 되어 한문이나 서예 자체에서 오는 문자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의 입체적 공간세계가 선생에게는 도자기라는 구체적 형상으로 나타나 거짓 없는 흙의 모습과 인간의 심성을 서화의 일치에서 와도 같이 작품의 생명성을 되찾게 된다.

둘째로 선생의 96년과 97년의 작품전은 선생이 자신의 입체적 공간세계에 대한 구상을 도자기라는 한정된 틀에 다 묶어 놓지 않고, 그 틀을 흩트려 놓되, 거짓없는 인간모태의 흙을 흙 그대로 수용하여 살아있는 작품을 표현하고자한 신(信)의 장이다. 이러한 굳건한 믿음의 장에는 선생의 학적 이론체계도 공예학 이상으로 절실했음으로서 서예학을 학으로서 연구한 이후, 흙의 몸체를 가진 우리의 토속적인 색상을 가지고 축첩된 한지나 혹은 천을 펼쳐감으로써 종래의 표현기법을 선생의 독자적 실험 기법으로 극복하고자 한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생의 서예학적 숙련과 재료의 변화만을 가지고는 그 자체에서오는 한계를 선생 자신이 막을 수가 없음을 확신하고, 근원성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묻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다시 선생은 텅 빈 마음가짐으로 철학적 논리와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선생의 독자적 철학연구에 몸을 맡긴다. 이 철학함은 작품을 작품의 품성으로 나타나게 하고, 작품의 품성을 예술정신으로 승화하게 하며 그리고 문인화를 문인화로 되게 하는 선생 본연의 장을 열게 한다.

이러한 선상에서 셋째로 이번 작품전은 선생이 2000년부터 새로운 내적 정신세계의 여러 형태와 그 예술성을 크게나 작게도 아니고, 복잡하게나 어렵게도 아니며, 그렇다고 형식에나 내용에만 집착하지도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형사(形似)나 생기(生氣)는 물론이고, 기운(氣韻)까지도 억제하고 은폐하여 수직구도 대신에 수평구도를 택하고 한문화제 대신에 한글화제를 택하며 그리고 먹과 함께 채색을 사용하는 그대로의 본연 그 자체가 그 자체로 드러나게 하고 있다. 이를 신사(神似)라 한다면, 눈을 가진 사람은 그 모두를 볼 수 있을 것이나, 육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심안을 가진 사람일 것이고, 혜안을 가진 사람에게는 선생의 작품들이 하나로서가 아니라, 그 전체로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선생의 여러 수상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나, 그 단적인 것으로서는 2001년 한국에서 제일가는 권위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동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획득한 그 수상이말해준다. 참으로 때로는 육안만을 가진 사람에게 선생의 이번 작품들은 무디게도 보이고 어둔하게도 보이는가 하면, 단순하게도 보이고 순박하게도 보이며, 더 나아가서는 졸(拙)하게도 보이기까지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 단순성과 소박성 그리고 생략성은 어느 한 면의 결함성으로도 보일지라도, 이러한 결함성이 처음과 끝에서 처음을 드러내어 주고, 끝과 처음에서 끝을 드러내어 주는 내일의 예술적인 힘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러한 결함성이란 그 작품들 전체를 드러내어 주기위한 현동 선생의 새로운 철학적 모습일 것이다. "소탈한 것이 소탈하게 다시 생기하는 거기에, 바로 참 인간성이 이노라"고 한 알프레드 니취케(Alfred Nitschke)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2004년 이번 현동 사공홍주 선생의 작품전은 그 동안 여러 과정을 몸으로 그리고 학으로 거쳐서 이처럼 이루어졌음으로 앞아르 또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제시하는 중요한 계기판이 될 것이다.

2004. 2.
백승균
(계명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