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홍주 이야기

문인화의 새길 트기, 세련된 정서적 울림들
-사공홍주의 근작들-

서예의 갓 입문했을 무렵의 사공홍주씨가 안겨 주었던 첫 인상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겸손하고 믿음직하며, 부드럽고 상냥하면서도 안으로는 어떤 완강함과 뚝심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그것이다. 그를 알게 된 지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런 느낌들은 조금도 왜곡되거나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같은 느낌들은 가시화되면서 줄기차게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오랜 전부터 안으로 다져지거나 잠재되어 있던 힘들을 바깥으로 발산하는 한편 그런 에너지들을 더욱 확실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성실하고 끈질긴 정진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온건한 듯 하면서도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일구고 있으며, 학구열도 날이 갈수록 뜨거워져 철학박사 과정까지 밝고 있는 열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왜 문인화에 대한 이론과 동양철학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붓게 된 것일까. 한국화와 서예를 함께 추구하던 그가 이젠 서예 가운데서도 문인화, 그것도 사군자에만 경도되는 연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결코 간단하게 도출될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유추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진정한 정신적, 사상적 경지로서의 '마음의 그림'을 지향하는 깨달음에 이르러 문인화에 기울어지게 되고, 그런 경지를 더욱 깊고 높게 펼쳐내기 위해 그 알맹이가 되어 줄 사상적 체계와 정신적 깊이와 높이를 풍요롭게 일구고 가꾸는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문인화의 현대적 구현'이라는 명제를 깊이 끌어안음으로써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이 걸었던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면서 부단히 자기 채우기와 같고 닦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도 한다. 이 말을 다시 뒤집으면, 그는 성리학자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면서 새로운 정신적·사상적 경지를 일궈내고 그 경지를 현대적인 문인화로 구현하려는 길 트기를 거듭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공홍주씨의 이번 근작들은 실제 이같은 명제에 접근하고 부응하는 면모들을 드러내면서 기대치를 높여 주기도 한다. 이제 그는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이 그들의 가치 체계와 정신적 경지를 표현한 그림으로서의 사군자를 빚었던 것처럼 나름대로 그같은 표현으로서의 현대적인 사군자들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이번 작품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며, 주목에도 값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내면세계를 떠올리기보다는 표현기법에만 기대어 양산되고 있는 문인화들과는 변별되는 사군자들을 보여 주고 있으며, 여백미·중화미·의경미 등 전통적인 문인화의 미적 특성들을 두루 거느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은밀하게 겹쳐져 들뜨지 않고 안정감이 두드러지는 기법들이 구사됨으로써 진정한 개성을 향한 차분한 행진의 모습을 읽게 해 준다. 특히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기법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이 은밀하게 끌어안고 있는 정서적인 울림들이 선과 먹과 담채를 통해 담백하게 번져 흐르고 있는가 하면, 내면세계의 고상한 내비침이 낯익은 듯 낯선 감수성을 동반하면서 표출되는 특유의 아름다움을 연출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근작들은 종전의 작품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큰 진전의 모습이 눈에 뛴다. 종전의 일부 작품들은 전통적인 표현기법에 바탕을 두면서도 실험성이 강하고 현대적인 감각이 강조되어 호감을 갖게 하는 면도 있었다. 종이와 먹 대신에 흙과 안료가 도입되는 등 새로운 재료를 개척하고 그 특성을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는 문인화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미덕들이 희석되는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다섯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같은 과정을 거친 뒤에 만난 원숙하고 세련된 경지에 다름아니라는 느낌들을 확실하게 안겨 준다.

작가 스스로도 이번 작품들은 문인화의 내면적 사상 체계를 연구하고 그 정신적 바탕을 이해하면서 빚게 된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표현기법과 현대적인 감각의 어우러짐과 자연스러우면서도 개성적인 내면세계를 세련되게 펼쳐 보이는 '새길 트기'의 은밀한 행진은 기대치를 다시 한번 높여준다고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2000년 5월 30일
이 태 수 (시인·매일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