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代 文人畵에 끼친 性理學의 영향

Ⅰ. 序 論

문인화는 동양의 회화 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대부분의 동양화 작품 속에서 문인화와 관련되는 특징들을 추출해 낼 수 있을 만큼문인화는 동양회화 전체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문인화는 산수화나 인물화, 화조화 등의 구체적 장르 개념과는 달리 여러 그림 영역의 상위 개념으로 작용하면서 더욱 추상화되었다. 이런 까닭으로 인하여 현재 문인화는 분명한 개념으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이렇게 분명한 개념규정이나 그림 영역의 확정 없이 무비판적으로 개념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문인화의 사상적 근거나 표현 양식의 특징을 분석해내는 데 혼란스러움이 야기되었다.

이 논문은 우선 지나치게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문인화의 개념을 성리학과의 영향관계라는 기준으로 좀 더 엄격히 규정하고, 더 나아가 수묵화가 발달하면서 문인 사대부들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한 문인화가 전통적인 유·불·도 사상을 흡수, 융합하면서 새로이 등장한 성리학에 어떻게 영향을 받으면서 독특한 문인화의 미감을 형성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하는데 목적을 둔다. 송대 문인들의 작품을 통해 나타난 문인화의 정신적 바탕은 대체로 성리학자들의 사상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은 문인사대부들로서 유학자이며, 동시에 문인화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당시 문인화를 통해 표현된 예술사상 연구는 그 시대를 살면서 고뇌한 철학자들의 사상 내용과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문인화는 수묵화가 발달하면서부터 고도의 철학사상과 審美사유의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시, 서, 화 삼절 사상을 근간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모름지기 서재에서 시를 읊고 글을 쓰며, 인간의 충의, 절개, 지조를 상징하는 사군자를 그리고 동시에 詩, 書를 餘技的으로 筆戱하는 것이 사대부로서 가장 고상하고 아취있는 생활태도라고 생각하여 왔다. 그러므로 문인화는 시, 서, 화의 일치로 독특한 예술의 한 분야를 이루어 놓은 단순한 개념으로서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작가의 心意를 사물에 의탁한 思意위주의 그림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물의 형태와 색채의 아름다움을 표현의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림 밑에 깔려있는 문학적 내용과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더욱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함으로써 문인화에 나타난 예술사상이 어떠했는가를 읽어 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여기서는 문인화를 통해서 송대 성리학자들의 예술사상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로 문인화는 송대 사대부 계층의 등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송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변혁과 발전을 가져온 획기적인 시기로 주목되어 왔다. 송대가 이처럼 발전해 갈 수 있었던 원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대부 계층의 등장이다. 이들 사대부 계층이 사회의 상류구조를 구성함으로써 사대부 사회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중국의 역사 발전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사대부 계층은 송대 성리학자들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문인화가들이었고 바로 이들이 餘技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들은 대부분 문인화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수묵의 발달이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하였다는 점이다. 문인화는 유학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발달하였다. 따라서 문인화의 중심 내용에 유학이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것이 심미적 가치기준의 바탕이 되어 왔다. 또한 그들이 사용한 수묵은 單色이 아니라 陰陽五行상의 五色의 單一化이다. 즉 행위는 일회로서 그치지만 그 효과는 五色이 모두 구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묵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그들의 철학적 사상과 일치했기 때문에 문인화는 더욱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문인화의 철학적 기반이 바로 송대 이후 등장한 성리학이라는 점이다. 문인화라는 개념 역시 송대 이후에 등장한 것이고, 문인화를 그렸던 사람들의 기본 가치체계는 예외 없이 성리학적 세계관이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문인화는 사대부들이 그들의 성리학적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송대 이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당시 문인화의 사상적 기반이 성리학이었음에도 이러한 문인화가 송대의 성리학에 어떠한 정신적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본 논문은 Ⅱ장에서는 문인화에 대한 기존의 개념들을 소개하고 이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여 새로운 개념규정을 시도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역사적으로 나타난 문인화의 정신적 특성을 분석하여 그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문인화의 예술사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문인화의 예술 사상적 근거를 송대 성리학자들의 철학사상으로 보고, 문인화에 직접 영향을 끼친 성리학의 기본개념들에 대한 분석과 이것이 문인화에 미적 특성으로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살펴보고, Ⅳ장에서는 Ⅲ장에 나타난 예술사상의 근거를 통하여 문인화가 어떤 미감을 추구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Ⅲ장과의 관련성 속에서 문인화에 나타난 예술사상을 성리학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해 나갈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문인화에 나타난 전반적인 예술사상을 검토하고, 문인화의 근본 정신이 성리학에 근거하고 있음을 해명하려고 한다. 아울러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문인화의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따라서 문인화에 대한 사상적 근거를 해명하려는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인화 정신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송대의 사상적 배경이 어떻게 변용, 발전되어 왔는가를 밝혀냄으로써 송대의 성리학이 문인화에 끼친 사상적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문인화의 새로운 정신적 바탕을 구명하고, 정체된 현대 문인화의 정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Ⅱ. 文人畵의 의미와 美的 特性

1. 문인화의 개념

문인화에 대한 개념규정을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들 중에서 분석 검토해보면, 문인화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정리된 개념도 공통된 이념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문인들이 餘技로 그린 그림을 문인화라 한다. 이것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문인화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우선 문인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문인이라는 말은 옛 시대부터 각기 의미나 내용의 輕重은 있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학문과 덕행을 닦음과 동시에 문장을 잘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변함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학문은 주로 유교경전을 위주로 하여 그 사상을 실천하고 덕행을 닦는 일에 이르는 것이며, 문장은 詩賦를 시작으로 詔 令 書 啓 頒 贊 銘 등 [文選]에 수록되어 있는 각종의 문체를 뜻한다. 이러한 문인의 조건으로는 무엇보다도 우선 학문과 문장을 들 수 있다. 학문은 주로 유교 정신이 그 중심을 이루었지만 위진 이후 육조시대에 이르면 도교사상의 영향으로 인하여 유교 경전보다는 노장사상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현학적 분위기가 일어나게 된다. 즉 유교 경전에서 중시하는 학문과 덕행이 아니라 자연의 순수한 미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의 풍조가 강해져 이것이 뒤에 문인의 원류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문장은 후세에 있어서 시가, 희곡, 소설 등을 주제로 하는 문학만이 아니라 철학사상이나 역사나 실용적인 奏 疏 書 啓등 각종의 문체를 넓게 포함하는 것으로 문장가란 학문과 문장을 잘하는 의미의 문학자를 지칭하게 된다. 문인의 다음 조건으로는 풍류라는 요소를 들 수 있다. 풍류는[漢書]의 流風餘韻을 의미하며 晉대가 되어서는 風雅 優雅의 뜻으로 쓰여 학문과 풍격이 높고 풍토가 소쇄하며 세속에서 초탈한 상태를 나타낸다. 즉 풍류는 유희의 세계에 있는 것이며, 그 행동은 실무와는 떨어진 형을 취한 것이다. 그 예로는"蘭亭의 流觴曲水"가 좋은 예이다. 또한 세속을 초탈하여 산림에 사는 것을 바라며, 산수를 자신의 棲家로서 丘壑의 氣를 기르는 것을 본령으로 한다. 또한 문방을 중심으로 한 생활 속에서 문인들은 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러나 문인은 글씨나 그림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문인의 흥미나 감상에서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단지 書人이나 畵人으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문인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보통은 관에 나아가 벼슬을 하고 있었다. 송대 이후부터 명대에 이르게되면 문인들은 文房淸玩의 취미를 같이하는 것이 통례가 된다. 문인은 시문을 만들고 서화를 잘하고 아울러 문방의 여러 취미를 가지고 있지만 또한 관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과는 제각기 생활상의 차이가 있었다. 이 시대에 문인은 높은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도 문인으로서 조건에 맞는 인물을 들 수 있고, 또한 관에 있으면서도 무슨 방법으로든지 탈속에의 지향을 보이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리고 동시에 관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으로서 세속으로부터 이탈하여 超脫絶塵의 경지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와 같이 문인화의 성격과 정의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는 했지만 문인의 근본적 의의인 학문, 문장은 역시 그대로 전해져 그 위에 여러 가지 성격이 더하면서 변모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문인이란 실로 범위가 넓어서 일반적으로 武人에 대한 文人으로 학자 또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武人이 趣味的으로 그린 그림을 [文人畵]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오히려 직업적인 전문화가들에 대한 상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시·서·화가 겸비된 남종화 계열의 그림을 말한다. 이것은 명대 동기창의 말에 근거한 것으로 이재승이 [문인화 정신성 연구]에서 주장하는 입장이다. 唐代부터 회화에 학문을 요구하는 사회적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학자들간에 성행되어 宋代에 이르러서는 실천단계에 들어가기 시작하여 시. 서. 화가 일치된 그림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明代의 董其昌에 이르러 문인화는 "唐代 王維로부터 시작하여 문인사대부들이 그린 그림으로서 시, 서, 화가 겸비된 그림"으로 정의되었으며, 그는 이것을 토대로 하여 남북 분종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르면 남종화는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면에 치우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 표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작가의 인격과 사상에 근거하여 어떤 화풍이나 화법에 구애됨이 없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또 그 감정을 글로써 나타내는 특성을 갖는다. 이에 반하여 북종화는 전문적인 직업화가들의 그림으로서, 섬세하고 세밀한 곳에까지 신경을 써서 단번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그림을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그려 나가는 화풍을 말한다. 따라서 북종화를 그리던 화가들은 사물의 형상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객관적인 사물에 집착을 하여 그 사물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이 화풍에서 화가들은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자연을 재해석하여 표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북종화는 수련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화풍과 기법을 강조하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통하여 화풍과 기법에 구속되는 아이러니를 갖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수묵 또는 채색을 사용한다는 것과 사물의 형상을 그림의 주된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셋째, 유. 불. 도 사상이 합일되어 나타나는 그림이다. 이러한 입장은 김경자의 [문인화의 藝術哲學 硏究]와 이재승의 [문인화 精神性 硏究] 등에서 나타나는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문인화를 유가의 중화사상과 도가의 자연사상, 불교의 선사상이 종합되어 나타나는 그림으로 보고 있다. 중화는 天下之大本으로서의 中이, 天下에 達道로서 和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에 있고, 만물이 자라난다는 사상에 근거한다. 이러한 價値의 實現은 天地萬物에 까지 파급되어 나와의 一體를 이루게 되므로 곧 "내 마음이 바르면 天地의 마음도 바르게되고, 나의 기운이 순하면 천지의 기운도 역시 순하게 된다." 致中和의 致는 人間主體의 도덕적 자각을 통하여 대상세계를 변화시켜 贊天地之化育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천지가 제자리에 있고 만물이 자라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與天地之參의 致中和는 주체적 誠과 객체적 明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방법으로서 "정성이 밝음으로 지향되는 것을 性이라하고 밝음이 정성으로 지향되는 것은 敎라고 하고, 정성스러우면 밝게되고 밝으면 정성스럽게 된?quot;고 하였다. 또 "성이란 물건의 끝과 시작이며, 성이 없으면 물건도 없으니 이것으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誠은 완전한 존재의 개념으로서 불안전한 인간을 人道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으로서 六藝의 敎로 연결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문인화가 발생 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게 된다.

道家 자연사상의 특징은 形을 빌려 道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는 형색과 聲音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것이다. 도의 관점에서 보면 지각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은 유한하고 일시적이다. 그러나 形而上의 '道'는 形而下의 '器'를 통해야만 드러날 수 있다. 정신의 최고의 경지는 이 형이상의 도를 깨닫는 것이고, 예술가는 이런 경지를 표현해야 한다. 또 무위자연을 체득한 성인은 비록 道가 無象의 象이고 無物의 象이며, 大象은 無象이기는 하지만 이 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形이나 音과 관련된 어떤 것으로 비유 할 수 있다. 즉 예술가는 象을 봄으로써 도를 깨닫고, 도를 깨달음으로써 특유의 예술적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후대의 시인이나 예술가는 산, 돌, 물 등의 자연 형상을 단순한 물리적,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도의 영상으로 이해하였다. 불교의 禪사상은 회화의 영역에 들어와서 그림과 선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禪三昧의 사상이다. 三昧世界는 그 사상적 성격상 고귀한 인격을 배양시키고 사색을 실천하게 하여 문인화가들로 하여금 속세를 떠나 心源을 究明하게 하였는데, 그 성격은 매우 內省的이고 唯心的이며 주관적이었다. 명상을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깨달아 질듯 말 듯한 간략하면서도 심오한 선사상은 눈에 보이는 실체를 그대로 나타내려고 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추상적 형태를 나타낸 것도 아니다. 곧 대상의 逸氣를 논하며 禪으로 妙를 얻고 형태를 초월하여 그 정신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상적 배경의 정신과 실재를 표현함으로써 자기자신을 자연으로 회귀하며 새로운 힘과 행복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禪을 그림에 일치시켜 그들의 예술사상의 권위를 높였으며, 나아가 문인화의 예술성에 더욱 더 높은 가치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선종을 좋아함으로서 문인들은 모든 시간을 고요히 생각하는데 이용하고 사회의 일들을 소홀히 하게 되었으며, 비록 그들의 심성이 명랑하고 깨끗한, 그리고 순결하여 티가 없는 경지에 도달하였으나 空談心性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하는 사업에 대하여 많은 정열을 들이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 정신은 내세에 의지하고 현세에 대한 노력은 소홀히 함으로써 속세와 왕래를 끊고 현실을 도피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넷째, 작가의 心意를 자연의 사물에 의탁한 寫意 위주의 그림이다. 김종태는 [중국의 문인화]에서 문인화는 작가의 높은 인격과 사상으로 시적인 분위기 속에 흥취된 상태에서 어떤 화풍이나 기교에 구애됨이 없이 맑은 정신상태에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글로 써서 표현한 그림이라고 하였다. 또한 민이식은 [한국문인화의 현대적 해석과 새 방법론의 연구]에서 문인화는 일기성, 사의성, 형상성 등에서 회화보다 우위에 있으며, 외연적 형사만을 강조한 文氣없는 회화는 생명력이 없고, 결국 회화적 근본의 상층구조는 문인화 기법과 정신에 있음을 말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외형보다는 그 속에 잠재된 내용을 중시하며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자연을 재해석하여 표현하려는 문인화의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문인화 작품 속에는 작가의 수양된 인품이 나타나며,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그윽하고 청아한 감정이 일어나도록 해야한다. 이처럼 문인화는 전문화가들에 비해 정신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표현 기법보다는 사의와 같은 정신 세계를 더욱 높이 평가함으로써 중국 회화에 있어서 주도적 위치에 오르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를 종합해 보면 각기 나름대로 문인화의 특징을 넓은 의미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처럼 문인화를 넓은 의미에서만 바라본다면 문인화의 개념은 그 외연이 무한히 확장되어 수묵으로 그려진 그림 대부분을 그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곧 그 중의 어느 것도 문인화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지는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明代 이후 문인화를 숭상하고 그 가치를 절대시하고자 했던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즉 구체적인 작품의 한 장르였던 문인화라는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추상적인 개념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산수화나 화조화, 인물화와 같은 구체적 장르보다 한 차원 높은 상위 개념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데는 문인화가 처음부터 표현상의 기법에 비해 내면적인 정신성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두었던 것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현대에 이르러 거의 모든 동양의 그림은 문인화에 속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어느 것도 문인화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대한 이처럼 넓은 의미의 개념규정은 문인화의 독특한 미감을 분석하는 데는 처음부터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인화의 영역을 최대한 좁혀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원래 문인화가 지녔던 성격과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으며, 그것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또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 변화되어 왔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문인화라는 개념을 엄격히 적용하자면 송대 성리학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그들의 가치체계를 예술로 표현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문인화라는 용어 자체는 송대 이후 등장한 것이며, 그들 그림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권위를 더하기 위해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상과 주된 관심사는 성리학적 가치를 보편화하는 것이었다. 문인화에 보이는 도가나 불가의 영향 역시 그들의 직접적인 영향관계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리학 자체가 도가와 불가의 사상 내용을 흡수함으로써 그 이전의 유학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으므로 성리학을 사상 기반으로 하고 있는 문인화에는 당연히 도가적 요소와 불교적 요소가 스며들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송대 이전의 그림들 중에서 문인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부분이 더욱 많아진다는 점에서도 더욱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결국 문인화는 송대 성리학의 사상적 기반 하에서 그들의 철학적 이상을 그림으로 체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문인화의 개념은 그 외연이 무한히 확장되어 수묵으로 그려진 그림 대부분을 그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을 정도이지만, 좁게 보자면 성리학의 사상적 영향하에서 그들의 사상 체계와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만으로 한정할 수도 있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문인화가 중국화의 주류를 차지한 것은 명대 이후 극히 일시적인 기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 체계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직업적인 전문화가들에 비해 정신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표현 기법보다는 사의와 같은 정신 세계를 더욱 높이 평가하였고, 그것이 이후 주도적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문인화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보다 좁은 의미에서 송대 이후 성리학적 가치 체계로 세계를 이해했던 사대부들들이 자신들의 이상과 사상을 표현한 그림으로 한정하였다.

이처럼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성리학이 등장하기 이전의 그림이나 성리학의 쇠퇴이후 그려진 그림은 비록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인화라고 할 수 없다. 그림의 기본 의도와 가치 체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문인화의 개념을 좁히는 까닭은 이렇게 해야만 문인화의 특징과 성리학적 사상 내용의 예술적 체현이라는 관점에서 문인화를 분석하기가 더욱 용이하고 보다 정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역사적 전개

일반적으로 문인화는 위진남북조 시기에 단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문인화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문인화의 요소가 포함된 그림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문인화가들이 그들의 기법과 구도를 계승했기 때문이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분명한 질적 변화가 있으므로 그것들을 문인화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송대에 이르러 중국은 사회적으로는 혼란했던 五代를 청산하고 강력한 지도 체제를 수립하여 漢족의 민족적 문화 제도를 재정비하고 그 정책에 있어서도 전장제도를 실시하여 문예가 극히 성행하게 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화원을 설립하고 화가를 고시 제도에 의하여 뽑았으므로 회화의 발전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궁전화원에서는 形似를 중시하는 것이 神似를 중시하는 것 보다 우세하였다. 그러나 문인화 이론이 흥기하면서부터 문인화가들은 형사보다 神似를 중시 여기게 되어 神似가 회화비평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것은 중국 회화이론 발전의 일대 변화이다. 심괄은 신사의 중요함을 {夢溪筆談}에서 "글씨와 그림의 묘는 마땅히 정신으로 깨달아야지 형상으로 구하기는 어렵다. 세상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대개 그 사이의 형상의 위치와 채색의 하자를 지적하는 것을 능사로 여길 뿐이다. 오묘한 이치와 그윽한 재주에 이르러서는 이를 아는 사람을 보기 드물다" 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보면, 송대 문인화가들이 神似를 중요시 여기는 사상은 당시 성리학의 정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대에는 전통 유가철학을 계승 부활 시켰으나, 이미 불가 사상과 도가 사상의 영향도 받은 선진 유가와는 다른 이른바 성리학이 발달하게 된다. 성리학은 二程형제의 학문을 계승한 朱熹에 의해서 보다 체계화되고 완전한 이론 형태를 확립되게 되었다. 주희는 "어떤 사물이 있으면 여기에는 반드시 理가 있다"고 하여 만물에는 그것이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간에 리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리는 눈으로 보이지도 귀로 들리지도 않는 사물의 정신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을 그림으로서 설명한다면 사물의 형태와 사물 속에 숨어있는 내적인 정신을 말하는데, 이러한 형이상학적 정신이 곧 문인화 정신이다. 그리고 이러한 리의 정신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것이 바로 水墨이다. 수묵이야말로 사물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데 적합한 색채로서 송대 문인들이 그들의 심성을 표현하여 문인화로 발전하였다.

송대 이후 원은 몽고민족이 세운 왕조이다. 詩文書畵를 충분히 이해하는 제왕도 있었지만 한족의 문인학자들 중에서 중요한 지위를 접한 것은 소수뿐이었으며, 대체로 고립되고 쓸쓸한 존재로 남았다. 따라서 이 시대의 문인학자들은 그 억울한 優思를 翰墨에다 쏟아서 그 정념을 맑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 한족 출신의 문인사대부들은 그들의 문화를 회향하는 복고주의적인 정신에 입각함으로써 원대의 문인화는 송대의 문인화 정신에 치중하면서 방법론적으로 회화를 전개하였다. 즉 고전양식을 부활시키려는 회고적인 취향이 있었으며 특히 唐代의 문화를 부활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당대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옛것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한족학자의 성격이나 인물에는 스스로 孤高하여 氣節을 중히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 송대 문인들이 가장 중히 한 것은 인간본성을 숭상하는 것이며, 그림에 있어서는 寫意적인 표현 방법을 중시하였다. 말하자면 육조 이래의 神韻에 대해서도 인품이 높고 낮음에 그대로 신운을 인정하려는 새로운 해석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원대의 화론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漢族 문인학자들은 우울한 심정을 翰墨에 의지하여 달래며 항상 그들의 가슴속에 애국심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한편 원이라는 새로운 이국 정부가 들어서자 사상적으로 전통적인 중국제도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원나라의 통치를 싫어하고 산림이나 재야에 은거하면서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산수화나 절기를 표시하는 문인화를 그려 淸逸사상을 표시하였다. 이와 같은 정황 속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필묵의 의취를 강조하고 지조 높은 사군자화를 그려 그들의 理學的 사상체계와 일치하는 문인화가 발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원대가 문인화의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명대에는 모든 사상계가 성리학으로 통일되었고, 모든 예술은 원대와 마찬가지로 복고주의적인 사조로 휩쓸렸다. 永樂帝 연간에는 주자학의 전통화를 세우기 시작하여 오경대전, 성리대전, 사서대전 등의 3대전의 편찬사업 등 구 문화를 부흥시키는 국가적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런 영향으로 명대의 문인화는 師古主義的인 화풍과 자아발생의 정서적 표현이 농후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문인화에 대한 절대적 價値化의 분위기가 일어났다. 이른바 동기창이 제기한 남북 분종론에 따라 북종화에 대한 남종화의 우위가 보편화되었고, 왕유로부터 동원, 미불, 원사대가로 이어지는 문인화의 계보를 확립함에 따라 문인화 정신이 주도적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明末 淸初부터는 계몽주의 사상이 개시되면서 서구의 문물이 서서히 유입되고, 이에 따라 자본주의적 양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특히 무역 경제체제가 움트기 시작하였고 인구가 집중되어 수공업이 발전하였고 아울러 상업자본이 형성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명대 회화는 강남지방에서 경제적 기반을 앞세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명대의 문인화는 아직까지 이런 경제적 발전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기교적인 면에서 발전을 하였다. 왜냐하면 명대의 문인화가들은 대부분이 직업화가가 아니었으므로 生活衣食과는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전통적인 문인화의 테두리 속에 많은 종파를 형성하여 봉건주의적인 편에 서서 귀족소유의 흥취에 따라 정서적이고 귀족적인 문인화가 전개되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당시의 문인들은 수장가이면서도 동시에 감상가라는 점에서 晉唐宋元으로 넓게 시야를 펼쳐 그 가운데서 자기를 완성해 가는 문인이 많았다. 그래서 大勢에 있어서는 오랜 서화론 위에 서 있으면서 그 성격에 있어서 지극히 섬세하다고 할 취미성이 강하다. 직접적으로 송대와 원대를 이어가면서도 그 맛에서는 다른 것을 내고있는 것은 다른 시대에는 이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蘇州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심주, 문징명, 당인 등 풍류제자들이 보이는 것이 이 시대의 문인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연을 재해석하여 성리학의 사상체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인화를 즐겨 그렸으며, 한편으로는 육상산, 왕양명 등이 주장한 육왕학의 영향을 받아 心을 중시하는 양명학으로 인하여 문인화의 정신에 있어서도 기법, 구도면에서 수묵 담채를 쓰고 여백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청대는 고집스럽고 고답적인 한족 계통인 明을 와해시키고 만주족이 정권을 수립하였는데, 明나라 때부터 차츰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청대에는 신문화운동이 일어나서 농민의 자유상품 생산이 고조되고 시민경제가 움트기 시작했으며, 공업방면에 있어서도 방직업, 도자업, 채광업 등이 발전하여 수출이 활발해졌고 그로 인하여 항구도시가 번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청대의 문인화도 그 시대적 사상체계에 부흥하여 성리학의 문인정신은 차츰 쇠퇴해지고 새로운 문인화풍의 형태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한 편으로는 성리학적 가치의 표현을 부정함으로써 문인화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기법과 양식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문인화 영역의 확장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명대 유민학파의 화가들은 법고주의에 반기를 들어 화법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 분방한 그림을 그려서 송대 성리학의 사상적 정신에 바탕을 둔 전통 문인화의 구태의연함을 싫어하였다. 이들은 만국의 한을 가슴속깊이 간직하고 일체의 비분을 대자연의 천지 속에서 해소하려 하였다. 그들은 가슴속에 있는 逸氣로써 자유로이 추구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화풍은 통일성이 없으며 화가들 역시 각처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적인 감정은 淸朝에 대한 반항의식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출현한 화가들이 金陵八怪와 揚州八怪라고 할 수 있다.

양주는 남북교통의 요충지이며 당시 중국에서 손꼽히는 상업도시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림이 상품화하기 시작함으로 인해 소장자나 감상가들의 기호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또한 자유로운 필치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림을 그려 일반 소장가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그림은 명대 유민화가들의 감정과는 다른 독특한 예술로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당시 사회는 약간의 자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고, 농업과 수공업이 결합되어 시장경제의 바탕이 이루어져서 시장 형성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에 호응하여 회화에 있어서도 독특한 예술이 발생하여 새로운 문인화의 화풍이 나타났다. 그들의 그림을 보면 정통문인화의 정신인 성리학의 내적 정신은 사라졌으나, 명대 유민화가들의 그 자유분방한 화풍에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송대 성리학 사상에 의해 나타난 전통 문인화가 학문적 화풍을 중요시한다면, 청대 문인화는 소장자나 감상가들의 기호에 맞추어 작가의 개성이나 기교를 중시하여 청대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성리학적 가치체계를 토대로 한 문인화는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3. 문인화의 미적 특성

문인화의 미적 특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성리학의 정신적 바탕이 그림으로 표출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으로 餘白美, 中和美, 意境美를 들고, 이 미적 특성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여백미 여백미는 그려지지 않은 공간의 미를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보려고 하는 것과 나타내려고 하는 동양의 마음이 여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여백은 그림에 있어서 완성되지 못한 상태가 아니라, 비어있지만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표현으로 다하지 못하는 것을 여백으로 남겨 둠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시각적 여운을 살리도록 하는 미적 요소이다. 여백은 함축된 절제로써 작용하여 암시적인 운동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작품에 있어서 표현된 부분을 드러나게 하고 내용을 주재하므로 대상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虛와 단순성, 암시 등에 의한 대상물의 자연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은 너무도 오묘하고 깊고 넓어서 그림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여백을 사용한다. 여백은 화면구성상의 공간분할의 역할 외에도 氣를 전달하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여백은 하나의 빈 공간으로서 조형미를 가지지만 그것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즉 형상도 없고 형적도 없는 형이상학의 정신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러한 여백의 특성이 외면상에 있어서는 조화와 통일의 미를 추구하고, 내면적 구실은 작품에 주제가 되고 변화를 주도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운동성을 가진다. 이러한 효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실체와의 통일된 조화와 그 내면에 있는 특성을 무한히 활용하여 작품 속에 드러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여백의 공간을 확보함으로 해서 여백을 통하여 화면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고 내용에 있어서는 더욱 풍부하게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표현되는 대상이 작가의 시대적 주위 환경이라고 생각한다면, 표현하려고 해도 표현할 수 없는 대상은 작가 자신의 정신적 내면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의 정신적 내면세계의 형이상학이 철학적 바탕이 되어 여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여백의 조형적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화면에 그려진 형체는 여백으로 인하여 시각적인 집중효과를 갖는다. 심리학적으로 우리의 시각은 단순한 형태보다 특수한 형태에 시각이 집중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또 보편적인 것보다 이질적인 것에 시각을 집중시킨다. 둘째, 대상의 이미지 전달 효과를 가진다. 화면에 물고기를 그리고 그 나머지를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이것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 차있는 물이라는 암시적 이미지를 전달한다. 셋째, 여백은 화면 밖의 세계, 즉 공간적 한계성을 무시하고 외부공간과의 연결을 의도하는 계속성을 가진다. 넷째, 미완성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앞으로의 성장을 의미하는 傾向性으로 외면적으로는 항상 변화가 심하지 않은 그저 담담한 것을 미덕으로 삼고 내면에 충만하여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겸양의 모습과도 같다. 다섯째, 그려진 형체와 그려지지 않는 여백으로 인하여 화면이 靜·淡작용으로 영원성을 지님으로서 幽玄美를 가진다. 표현형체의 긴장된 주위에는 적막한 여백이 존재하므로 그 긴장이 영원성을 유지하게 한다. 그러므로 여백은 작품에 있어서 대상을 존재하게 하는 바탕이 되며, 또한 대상이 움직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함으로써 살아있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2) 중화미 송대 성리학에서 중화는 {中庸}에서 말하는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情이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 이르고, 發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和라고 한다."의 아직 發하지 않는(未發) 中과 이미 發한(已發) 和를 中和 이론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단초에 程伊川에서부터 비롯되는데 이천은 인간의 마음을 구조적·원리적인 측면(體, 性)과 현상적인 발용의 측면(用, 情)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중용}의 未發·已發에 분속 시켰다. 이때 中이란 아직 심리현상으로 발출되지 않는 심의 상태이고, 和란 심리 현상으로 발출되지 않는 심의 원리·구조가 은폐 혹은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 발출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개념 정의와 아울러, 이천은 마음이 아직 발하지 않는 상태의 中을 涵養 공부로써 보존해야 하므로, 자신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는 본래의 마음을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 공부로 연결된다. 이와 같이 중용에서 말하는 중화는 자신의 내면적 성장을 시도하는 心과 연결되는 것이지만 이 논문에서는 중화를 조화된 통일의 미에 한정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문인화에 나타난 중화미의 미적 특성은 기의 작용으로서 음양의 상보적 대대 관계 속에서 조화된 통일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나타난 중화미는 안, 가운데 등의 의미를 가진 中字와 조화, 수용, 균재, 친화 등의 의미를 가지는 和자로 구성된 조화의 통일을 표현한 것이다.

천하만물이 安住하려면 반드시 상호관계가 중화 상태인 가장 적합한 가운데에 처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존재는 중화를 얻음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우주의 모든 활동은 중화를 향해서 움직이게 된다. 사실 우주 만물의 존재와 활동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일체의 변화는 영원히 中을 향해 구하게 되며, 영원히 和를 구하게 되는데, 각기 자기의 성질대로 和로써 中을 얻으려 한다.

그러므로 문인화가들은 작가의 지나친 감정과 표현을 억제하여 객체와 작가의 감정을 적절히 잘 융합하여 일체로 된 느낌을 주는 중화감이 있는 것을 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중화사상은 작품 속에서 주체와 대상, 주관과 객관, 감성과 이성, 정감과 의지 등의 소박함과 조화의 통일을 강조하고 합리적인 규범에 따라 분수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였다. 이러한 것은 중을 취한 가운데서도 같음이 없게 하고, 통일된 가운데서도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비록 심미원칙에 위배되었다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중화미를 얻기 위해서는 설정된 심미적 법도에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는 중화적 경지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 창조는 意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작가의 예술적 기량에 의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중화의 미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성질이 있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이다. 이것은 情景으로서의 통일체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을 융합하여 통일되고, 快談중의 우아함이 있는 미를 표현한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감정교류와 협조이다. 육신, 친우, 전선에 나가있는 병사, 멀리 있는 남편을 생각하는 부인, 혹은 뜬구름과 같이 돌아다니는 여행객과 같은 사람들 사이의 순박한 감정을 깊고 강한 인상을 주는 필치로 표현한다. 셋째는 예술 자신의 내부 정신의 조정 및 조절이다. 여기에는 균형이 이루어진 단정한 형식과 엄격한 규칙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함유되어 있는 정신적 조화와 운율도 있다. 이 효과를 실현하는 비결은 곧 묘사하는 대상은 가슴속의 가장 깊은 곳에 두고,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영향력이 강한 내용을 잡아서 그것으로 하여금 독자의 상상과 연상을 촉발하고 공명을 환기하는 것이다.

3) 의경미 의경미는 공부가 오래도록 쌓임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미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학문과 교양에 의해서 사실적인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을 재해석하여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寫意的인 그림에서 나타난다. 의경미는 흔히 예술적 경지를 표현하는 단계인 生·熟·生중에서 마지막 生의 단계를 말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처음의 生은 교육의 혜택을 받기 전에 삶에 대한 의미나 자신에 대한 사고도 갖추지 못하는, 즉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찾을 수 있으며, 熟이란 인간의 윤리 도덕적 바탕 위에서 교육과 수양을 통하여 禮에 어긋남이 없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절도에 맞게 발할 수 있는 和의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문인화 작품에 있어서는, 표현과 기법을 습득하고, 반복된 수련을 통하여, 능숙한 단계에 들어가는 과정, 즉 生法을 익히고, 마음을 수양하는 수련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는 生의 경지는, 그 동안 법의 테두리 속에서 그 법을 익히고 거기에 능숙해진 그 나머지, 곧 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운필과 표현기법으로서 법을 초월한 경지를 말한다.

이러한 경지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나 커서 그 크다는 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경지는 작가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마음속에 표상의 본질을 담은 후에야 자신도 모르게 휘두르는 붓 아래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기법이나 운필은 송대의 회화 비평 가운데 逸格에 해당하는 것으로 常法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대상을 받아들인 후 새롭게 재해석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이른바 대나무를 그리는 데 있어서 작품에 임하기 이전에 이미 마음속에 대나무가 있은 연후에 붓 아래 저절로 그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은 초월적인 것이지만 누구나 학문을 깊이 닦고 오래도록 수양에 힘쓰면 직접 체득할 수 있는 우주만물의 원리이다. 즉 끊임없는 수양과 공부를 통하여 어느 순간에 豁然貫通하게 되어 어떤 법에도 구속이나 구애됨이 없이 저절로 그러한 경지를 말한다. 이러한 경지가 유가에서 말하는 마지막 경지인 聖人이 되는 경지이다. 이것은 곧 공자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는" 경지와 같다. 또한 비록 과정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자가 추구한 逍遙의 경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나타난 의경미는 작가의 정신적 함양에서 비롯됨으로 오랜 훈련과 수양을 통하여 작가의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와서 표현 기법이나 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운필 그 자체에도 구속되지 않는 저절로 그러함을 통하여 나타나는 미적 특성이다.

Ⅲ. 文人畵의 性理學적 기반

1. 儒·佛·道와 성리학의 흥기

성리학은 도가와 불가의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를 수용하면서 전통적 유학을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새롭게 등장한 철학사상이다. 대체로 성리학에서 다룬 주요 문제는 理氣, 心性, 致知, 主敬, 主靜, 涵養, 知行, 己發, 未發, 道心, 人心, 天理, 人欲, 天命之性과 氣質之性등이다. 이러한 주요 문제들에서 다른 여러 문제가 파생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리기 문제는 리기의 선후, 리기의 동정, 리기의 동이, 리기의 강약 등의 문제를 파생시킬 수 있다. 이처럼 이전의 경전에 실려 있던 문제들은 새롭고 특이한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의의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한 이해하는데 종종 혼란을 겪는 개념은 理, 氣, 心, 性이다. 이러한 혼란이 빚어지는 이유는 사상가마다 개념들의 쓰임새가 다를 뿐 아니라 동일한 사상가에게서도 같은 개념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리학의 개념들은 모두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체계들의 기본 경향은 당대 중기에 이미 표현되었다. 당대의 문화와 송대의 문화 사이의 관계는 사회사의 관점에서 볼 때 큰 차이가 있다. 즉 당대의 귀족 장원제와 송대의 평민 지주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정치사의 관점에서 볼 때도 당대의 번진할거와 송대의 중앙집권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중국 문화 전체의 발전과 학술 조류의 변천이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당대 중엽의 중국 문화에는 세 가지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불교의 새로운 형태인 선종의 성행과, 新文學운동의 전개, 신유학의 흥기이다. 이 세 형태의 발전은 북송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고, 송대 이후의 문화를 주도할 중요한 형태를 이루었다. 당대 중엽에 시작하여 북송 때 안정되고 확립된 문화적 전환은 종교개혁과 고문의 부흥, 고전사상의 새로운 건설이며 '근세화' 과정의 일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세화의 문화 형태는 중세의 정신과 근대 공업 문명의 중간 형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기본정신은 두드러진 세속성, 합리성, 평민성이다. 그러므로 고전 유가의 부흥은 합리화라는 근세화의 전 과정에 적응하였다. 그러나 어떤 형태와 특징을 갖는 신유학을 건립하느냐의 문제는 사상의 내부 연원과 외부도전을 벗어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신유학에서 기울인 노력은 한 편으로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가치 체계를 강화시키는 것과 아울러 그것을 추상화하여 天理로 만드는 일이었으며, 동시에 그것을 인간 본성의 내함으로 규정하여 극명한 가치 이성의 형태를 체현하는 일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는 운동이 확산되면서 그들과의 이론적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성리학은 불교와 도교의 이론들을 다양하고 새롭게 자기들의 뜻으로 끌어들여 경전과 경전을 상호 연결시켜 그들의 출세주의를 배척하고, 동시에 불교와 도교가 정신생활을 발전시킨 풍부한 경험을 충분히 흡수하고 정신의 수양, 발전 完善등 여러 과제와 경지를 탐구하여 인문주의에 기초하면서도 종교성을 함께 가진 '정신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처럼 불교와 도교가 주자학에 흡수되고, 주자학의 이론적 근거로 발전하게 된 것은 불교의 선사상과 도교의 자연사상이 선진 유가를 형이상학적 우주론으로 발전시키는데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기틀이 되었다.

우선 불교에서 말하는 禪이란 수행의 한 방법으로서, 그 연원은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 시대까지 소급된다. 그러므로 선사상은 선종이라는 한 종파에 관한 것이 아닌 모든 종파에 관계되는 것으로 보아야겠으나, 그것이 수행의 한 방법이 아닌 종파로 성립된 중국 선종의 경우는 특이한 의미를 지닌다. 선은 범어의 명상(dhyana), 빠-리語의 jhana의 어미 탈락인 jhan의 音譯으로 靜廬 즉 고요히 생각하는 일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坐禪은 中國에서는 參禪이란 적극적인 형태로 변모된다. 이러한 선종은 중당, 만당 시대로부터 북송시대에 이르는 동안 갈수록 유행하게 되었고 종파 또한 많아졌으며, 논쟁의 쟁점이 갈수록 정교해지게 됨으로써 다른 불교 종파들과의 경쟁에서 압승을 거두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일종의 準汎神論的인 친근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자신과 자연이 일체가 되도록 합칠 것을 요구하였고, 자연으로부터 영감이나 깨달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사의 굴레부터 벗어나고, 심령의 해방을 획득할 것을 희망하였다. 영원히 존재하는 자연, 산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인간세계의 부귀영화보다 뛰어나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인위적인 조작보다 뛰어나다. 그 理想을 실현하려는 實踐修道에 있어서는 종교적 조직인 戒, 定, 慧의 三學에 근거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계율은 행위를 규정하는 외적인 것이고, 선정은 불교의 理想을 體現하는 내적인 정신의 방법이다. 이것은 기원 470년을 전후하여, 중국에 傳道되어 당시 불안한 사회 정세 가운데서 노자 사상과 서로 통하여 간결한 '安心의 道'로써 중국화 되었다. 이와 같이 중국화 된 선은 見性成佛의 경지에까지 도달함을 특색으로 하였다. 이처럼 불교에서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이론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인간의 윤리도덕을 중심으로 한 유가사상은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불교의 불성론을 대신할 수 있는 맹자의 성선론을 근거로 하여 왕도정치, 천과 인의 문제, 절대와 개별, 수양과 관계되는 것, 기본개념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유가의 도통론을 확립하고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해석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도가의 자연사상은 도가정신의 내적 객관세계에 진입하면 항상 자연세계에 이르는데 이는 도가 정신이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 해탈을 구하는 정신추향의 제한을 받는다. 허정한 마음, 그 자체에 대해서 논한다면 결코 이런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허정한 마음은 사회와 자연이 마음대로 왕래 할 수 있는 길을 탐구하였다. 그 결과 장자는 인간을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함께 生하였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천인합일의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 도가 천지만물을 생성하지만 그것은 형태도 소리도 없어 인식이 불가능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無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처럼 목적의식이 없고 의미를 지닌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無爲自然이라고 한다. 또 그는 도는 직접 감지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로 형용할 수 없고 한계를 그을 수도 지각할 수도 없지만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본다.

이러한 도가사상의 자연주의는 우주로 확장시켜 천인합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유가사상은 인간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을 중시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유가사상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 인간의 윤리 문제를 추구하는 유가사상은 일반 종교에서처럼 내세적 초월적인 것이 아니다. 현세적 현실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유가에서 추구하는 도는 현실적 인간의 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송대에 이르러 유학의 부흥운동에 앞장선 신유학자들은 유학이 인간문제를 주로 관심하고 그것이 피상적인 현실 문제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인간문제의 철저한 추구는 자연히 우주 문제와 연결되므로 인간의 도는 궁극적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서로 상관한다는 해석으로 발전시키고, 인간 중심사상을 형이상학적 우주 본체론으로 끌어올려 도가의 자연사상과 일치할 수 있는 천인합일의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2. 문인화와 관련된 성리학의 주요개념

북송의 성리학은 당시에 도학이라 불렸지만, 남송 때 이루어진 성리학의 분화로 도학이라는 명칭은 남송 성리학의 한 학파에만 사용되게 되었다. 송대를 통틀어 볼 때 그것은 성리학의 주류파를 특별히 지칭할 따름이지 성리학 전부를 포괄할 수 있는 명칭은 아니다. 이것은 '도'와 '학'을 따로 따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 어떤 학술체계나 학파를 특별히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주희가 사용한 도학에는 광의와 협의의 두 의미가 담겨 있다. 광의의 도학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공자가 개창한 유가 전통을 뜻한다. 예를 들면 주희는 "子思는 도학이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中庸}을 지었다"고 했는데, 이때의 도학은 공맹의 정신적 정통성을 가리킨 말이다. 협의의 도학은 공맹의 도통을 계승한 洛學을 위주로 한 사상체계를 가리킨다. 낙학은 바로 二程의 학문이다. 이정의 스승인 周敦 , 李 , 張載도 洛學派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주희가 말하는 도학이란 주돈이·장재·이정의 학문을 가리키며, 주희는 이들이 유학 도통의 새로운 발전 단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였다.

주희는 대체로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정이의 이기론을 받아들여 자신의 우주론을 구성하였다. 즉 주돈이가 말한 "무극이면서 태극"을 형이상자로서의 道 혹은 理로 보고 陰陽, 즉 兩儀를 형이하자로서의 器 혹은 氣로 본 것이다. 그리하여 "형이상자는 형태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니 이것이 理이다. 형이하자란 모양도 있고 드러남도 있으니 이것이 器이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천지사이에는 理도 있고 氣도 있다. 理란 형이상자로서의 도이며, 만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다. 기란 형이하자의 器이며, 만물을 생성하는 재료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만물은 생성될 때에 반드시 리를 받은 연후에야 성을 갖게 되고, 기를 받은 연후에야 형태를 갖게 된다. 그 성과 형이 비록 한 몸을 떠나지 않는다 해도, 그 도와 器 사이에는 구분이 심히 뚜렷함으로 혼돈해서는 안 된다"라고 함으로써 형이상자로서의 태극, 즉 理와 형이하자로서의 기물, 즉 기의 이원론적 우주론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철학사상이 성리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진시기에 발원한 유가사상을 발전시켜 선진 유가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주론적, 본체론적 논증을 제공한다. 둘째, 聖人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생각하고 성인의 정신경지 실현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셋째, 仁, 義, 禮, 智, 信을 도덕의 근본 원리로 선진 유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유가의 도덕 윤리가 내재적 기초를 지니고 있음을 논증하며,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하는 일을 도덕실천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넷째, 인간정신의 전면적인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각종의 '공부법' 즉, 구체적인 수양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하였다. 이러한 공부법의 조목들은 주로 사서와 초기 도학의 토론 가운데서 제시되었으며, 특히 심성 공부에 집중되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특징에 근거하여 우선 성리학적 우주론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太極과 陰陽 개념을 정리하고자 한다.

1) 太極
주희에 의하면 "태극은 천지 만물의 이치를 총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극은 음과 양을 낳는다고 생각하여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 그래서 태극은 명칭을 초월한 궁극적 존재이고, 형체를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한 無와 같은 존재라고 본다. 그리하여 "이른바 태극은 천지만물 보편의 리이다." 즉 태극과 리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천지에 대해서 말하면 태극은 천지에 내재하고, 만물에 대해서 말하면 태극은 만물 각각에 내재한다. 이러한 태극과 리의 관계에서 보면 주돈이가 말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는 말은 무극은 리가 무형이라는 면에서 말한 것이고, 태극은 리가 음양·오행의 근원이라는 면에서 말한 것이다. 태극은 천지 만물의 리를 합쳐서 하나로 이름한 것이다. 즉 그 器와 形은 없지만 천지 만물의 리가 여기에 있지 않음이 없다. 태극은 인간계의 사물을 떠나 독립한 하나의 물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陰陽·五行의 조화의 심오한 법칙이 되는 것이 태극이고 리이다.

또한 인간 법칙으로 보면, 인·의·예·지·강·유, 선·악이 되는 것도 태극이고 리이다. 그래서 성인은 자연법칙과 인간법칙의 일체인 리를 자기의 본성으로 여겨 본래대로 편안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太極은 곧 理이자, 자연법칙과 인간법칙을 통칭한 말이다. 그러므로 리(太極)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태극에는 사물을 생하게 하는 리, 곧 사물을 생하게 하는 작용의 근거가 있으므로 空이나 無는 아니며, 사물과 단절된 초월적인 존재도 아니다. '무'가운데 본래 理가 내재하는 것이다. 형으로서는 '무'이지만 理로서는 '유'라는 것이다. 이러한 리는 기와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천하에 리가 없이는 기가 존재하지 않고 또 기가 없이는 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리는 기 가운데 존재하며 기는 리가 내재하는 공간적 장소로 여겨진다. 그것은 리가 '무'와 같으면서 초월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리는 무와 같으나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곧 기의 근거로서 존재한다. 일체의 사물은 기의 구성들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모두 근거로서 리, 곧 태극이 있다.

리는 형이상의 도이며 사물을 생하게 하는 근본이다. 기는 형이하의 器가 되고 사물을 생하게 하는 材具이다. 모든 사물은 기로써 구성되며, 리가 기를 생한다. 따라서 리는 만물의 始原이다. 천지 사이의 모든 존재는 존재하게 하는 근거가 있고, 존재해 나가는 단연한 법칙이 있다. 이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이어서 하늘이 부여한 것이지 인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조리의 일관성이라는 면에서 理는 '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관된 리는 정연하여 난잡스럽지 않다. 여기에서 리의 법칙성과 일관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칙은 또한 도덕법칙으로 나타나게 된다. 천도가 유행하여 조화로써 모든 만물을 발육하는데 무릇 소리, 색깔, 모양, 형상을 갖고 천지 사이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모두 사물이다. 이에 사물이 존재하면 그 사물이 만들어지는 소이는 각각 당연의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기에 만물 스스로가 그만 둘 수 없다. 이 모두가 하늘이 부여한 것에서 얻는 것이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지극히 간절하고 가까운 것으로 말하면 마음, 곧 심이라는 것이 진실로 몸에서 주재가 된다. 그 '체'는 곧 인, 의, 예, 지의 성이고 그 '용'은 곧 측은, 수오, 공경, 시비의 정이 혼연히 가운데 있다. 사물이 존재하는 한 사물을 존립하게 하는 것, 존재의 근거가 있고 당연한 법칙이 있다. 그것이 이른바 리이다. 리가 인위에 의하지 않는 천부의 것이며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리의 자연성·필연성을 보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이 다르지 않으며 사람과 사물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리의 보편성을 본다. 또 공간의 대소와 시간의 대소에 상관없이 모든 현상에 내재한 것이라는 데서 리의 초재성을 보고, 군신, 부자, 부부 등 인간 관계의 당연한 법칙이라고 하는 데서 리의 규범성을 본다.

또한 리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절대성과 상대성이라는 리의 상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리의 절대성에 관해서는 근원성, 일관성, 초재성, 완전성, 영원성등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리는 절묘한 실재이며 무한정하다. 움직이고 있을 때에도 고요함이 있기 때문에 움직임이 없다고 한다. 고요할 때에도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고요함이 없다고 한다. 즉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 곧 동정, 음양이 무한히 착종하고 유동하는 속에 존재하며, 그것을 초월한 것이 바로 리이다. 또 상대성의 관점에서 보면 리에는 내용의 모순 대립은 없지만, 행위의 대상으로서 단계가 있다. 행위는 기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리가 행위의 대상이 될 때 리는 기와 연결된다. 리는 기와 상호 의존하는 관계 즉 상즉불리의 관계이다. 리는 무와 같은 것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만물의 시원이요 근원이다. 리는 초시간적, 초공간적이지만 기와 상즉해서는 그 법칙성, 일관성, 규범성, 근원성, 완전성, 자연성, 필연성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리에 대한 기술에는 상반되는 두 측면이 있다. 그것이 곧 절대성과 상대성, 완전성과 치우침, 동일성과 상이성, 포괄성과 개별성 등이다. 이러한 리기의 상호작용은 만물을 낳고 또한 주제함으로 모든 물질세계의 운동은 태극의 추동으로부터 말미암으며, 태극은 음양 두기의 통일체가 되어서 움직임과 멈춤을 초월하는 것이다.

2) 陰陽
氣라는 개념은 그 정의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사물을 구성하는 물질적 근원으로서, 생명력과 활동력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氣一元論의 견지에서 보면,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변화의 근원이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빈 공간은 사실은 기로 충만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가 모여 만물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태허의 상태가 된다. 이러한 기는 음과 양이라는 두 體를 가지고 있고, 陰陽의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움직인다. 비고 참(虛實), 움직이고 고요함(動靜), 모임과 흩어짐(聚散), 맑음과 탁함(淸濁)은 음양의 구체적인 내용으로써 이들의 작용이 강하고 부드러움, 느리고 빠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품부받은 사물에도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음양의 두 측면들이 함께 모여 氣라는 통일체를 이루며 그것들이 감응하여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만물의 생성하고, 운동하며, 이러한 과정 중에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주자는 기를 음양으로 파악한다. 기일원론과 마찬가지로 만물의 생성은 기로 이루어진다. 기는 음양오행이다. 음양오행은 "천지 사이에 모든 만물이 生生하는 것에 미루어 음양에 근본하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陰陽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所以然으로서의 理를 상정하고, 음양을 낳는 근거로서 태극(리)을 구한다.

天地 사이에 理도 있고 氣도 있다. 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道이고 사물을 낳는 근본이다. 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器이고 사물을 낳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에 반드시 이 理를 품부받은 후에 性이있고 반드시 이 理를 품부받은 후에 형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체가 있는 것은 기이지만 비록 형체가 없는 것일지라도 氣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 아닌 사물은 없으며, 모든 사물은 기로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점에서는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신체, 보고 듣는 것과 호흡의 기능, 마음, 지각, 언어와 동작, 사려, 기억, 판단 모두가 기의 작용이다. 주희는 "사람이 태어나는 처음 순간에 이미 기가 존재한다. 형이 이루어진 때에 백(魄)이 먼저 있고, 형이 이미 이루어진 때에 정신이 발하여 앎(知)이 있게 된다. 이미 형체가 있은 뒤에야 비로소 정신과 지각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생사도 기의 集散에 의해서 결정됨을 말한다. "모든 사람의 언어, 동작, 사려, 영위 할 수 있는 것 등은 다 기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모든 형체가 있는 사물은 기의 집합에 의거한다. 기는 만물을 생하는 근원이다. 그러나 생산은 오직 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리와의 협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모든 사물은 이러한 기를 품부받는 데 따라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통함에 있어 혹은 청탁이 다르지 않을 수 없고, 그 올바름과 혹은 美 , 惡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품부받은 바의 질이 맑은 것은 知이고 탁한 것은 愚이며, 아름다운 것은 賢이고 나쁜 것은 不肖이므로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사물의 리를 인식하는 理的 능력이 있는 사람의 氣는 맑지만, 그 행동이 理에 들어맞을 수는 없다. 그 때 氣는 불순하다. 행동이 근후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의 기는 순하지만, 그 지적 능력이 반드시 리를 인식할 수는 없다. 그 때 기는 탁하다. 이 경우도 기의 청탁이라는 물리적 개념이 지능의 고하와 행동의 선악이라는 가치 개념으로 연결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를 논하는데 있어 하나의 기와 음양, 음양과 오행의 관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의 기, 두 개의 기, 음양, 음양 二氣, 오행의 기, 음양오행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며, 또 이와 같은 것들을 다르게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음양을 하나로 볼 수도 있고 두 개로 볼 수도 있다. 두 개로 보는 것은 기가 음양으로 나뉘어 대대하는 측면을 보는 것이고, 하나로 보는 것은 음양이 하나로서 기의 소장(消長), 곧 유동하는 측면을 보는 것이다. 음과 양이 있는 한 양자는 상호 변화하고 융합하여 오행을 낳는다. 오행의 생성 순서도 음양으로 나뉘고, 오행의 운행의 순서도 음양으로 나뉜다. 이와 같이 오행의 변화는 무한하다. 음양이 변화하여 생겨난 오행과 오행의 음양 변화를 일관하는 것이 음양의 법칙이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추는 것은 끝이 없이 순환한다."고 하는 것은 동정의 순환 뿐 아니라, 음양의 순환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음양은 일정한 형체가 없는 것이다. 음과 양은 정체가 없지만 항상 유동한다. 그러면서도 음양은 서로 상보관계를 가지며 대대하는 관계이다. 이러한 음양의 조화로 인하여 천지 만물은 생성된다.

'조화'는 음양의 기가 운동·변화하는 근본적인 방향이며, 하나로 통일되어 가장 아름다운 상태를 의미한다. 즉 '기'의 변화가 그윽하고 깊어 헤아릴 수 없고 무궁무진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화로워야 한다는 요구에 근거를 두어야 하며, 조화롭기 때문에 천지 사계절에 음양소장이 그 질서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만물을 화생하여 번창시킬 수 있게 된다. 조화는 천지 음양의 기의 운동에 내재된 가장 큰 영향으로 그것은 결코 정지하여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음양이기가 조화하여 中和를 이루어 낸다. 음기가 지나치면 사물의 운동이 정지되고, 양기가 지나치면 사물은 지나치게 성장하게 된다. 따라서 음양이 서로 교차하고 자라나고 소멸하는 데에는 법칙이 있다. 즉 음이 성하면 양으로 돌아가고, 양이 성하면 음으로 돌아가서 지나치게 모자람이 없어야 비로소 '조화'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는 태양의 기와 태음의 기가 서로 통하여 왕래하고 교감하여 중도를 얻음으로서 중화의 기를 얻을 수 있다. 즉 중화는 음양의 기가 운동하고 변화하는 근본추세와 요구로서 작용하고 이러한 상태가 되어야만 만물은 비로소 번식·생장할 수 있고, 백성은 비로소 화목·단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천하는 비로소 오래도록 태평할 수 있다. 즉 기의 운동 변화가 유행하여 만물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을 계속한다. 음양오행이 운동하며 그침이 없는 것은 {주역}의 "끊임없이 낳는 것을 역이라 한다"는 말에서 시작된다. 곧 온갖 사물에 있어서 기의 변화를 한마디로 생생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낳고 낳는 천지만물의 원리는 음양의 조화에서 비롯된다.

3. 誠·敬의 功夫論

송대 성리학자들의 공부론으로는 誠과 敬을 들 수 있다. 誠에 관한 논의는 {孟子}·{中庸}·{筍子}·{易傳}·{大學}등 先秦과 秦漢之際의 原始經傳에서 두루 발견되며, 唐末 李 를 거처 北宋 周敦 에 이르면 다시 중요한 공부로 계승된다. 誠에 대한 논의는 "誠은 하늘의 道요, 誠을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道"라고 말한 {孟子} 에서 제기되었으며, 이를 이어받아 "誠은 하늘의 道요, 誠을 하는 것은 사람의 道"라고 말한 {中庸}에 이르러 완성된 체계를 가졌다. 곧 유가에 있어서 도덕형이상학의 체계가 이 때에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誠은 '天道'요 '思誠'과 '誠之' 하는 것은 人道이므로 誠은 사람과 하늘 나아가 心과 理를 완전하게 합일시켜 주는 내용을 가지며, 유가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天人合一을 매개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다. 誠의 내용이 하늘과 사람을 말한 것은 그 각각에 따라 본체의 뜻과 공부의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주돈이는 {通書}에서 중점적으로 誠을 논하고 있다. 그는 思孟學統의 핵심을 '誠'으로 보고 이 성을 매개로 하여 사람과 우주 본체간의 합일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성의 의미 속에는 우주 본체와 연관된 뜻이 있는가 하면 사람과 연관되어 사람이 우주 본체와 합일될 수 있는 공부의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寂然하여 不動한 것은 誠이요, 감응하여 마침내 통한 것은 神이다. 動하였지만 아직 형체가 없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이 幾이다." 여기에서 성이 寂然不動하다는 것은 곧 無爲하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誠의 主靜·無爲說은 내용적으로 主靜·無欲의 공부설과 연결된다. 곧 先儒의 存養工夫說 뿐만 아니라 誠工夫說 마저도 主靜·無欲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즉 주돈이는 {中庸}과 {易傳}의 내용을 연결시켜 誠을 乾道 곧 天道의 내용으로 본 한편 誠은 다시 主靜·無欲으로 해석하여 '思誠' '誠之'하는 人道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삼았던 것이다. 한 편 정이는 주돈이와 달리 至誠한 것은 비롯 하늘의 道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至誠한 하늘의 道는 만물을 화육시키고 生生不窮하여 각기 性命을 바르게 함으로 無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곧 誠이 구체적으로 無妄의 내용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誠之'하는 사람의 도가 나오게 되므로 정이는 誠과 敬을 구분하여 '誠之'하는 공부과정으로 경을 말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의 내용은 주로 본체 혹은 天의 방면에 치우쳐 있으며, 성은 '誠之'로서 敬공부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일 뿐 공부론의 영역에서 제외되기 시작하였고, 그대신 경공부가 점차 그의 공부론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공부의 대상은 마음이다. 따라서 경공부는 곧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다. 마음 공부는 크게 知의 주체로서 心에 대한 공부와 行의 주체로서 心에 대한 공부로 나눠 볼 수 있다. 지의 주체에 대한 경공부는 밖으로부터 유혹을 막아내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바깥 사물에 접촉하여 감응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사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내 맡겨 버리면 바깥 사물에 이끌리고 만다. 이러한 것을 면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주된 것이 있어야 하는데 마음에 주된 것이 있게 되면 마음은 텅 비게 되어 사악한 것이 마음속으로 들어 올 수 없게 된다. 만약 마음에 주된 것이 없게 되면 마음은 가득 차게 되어 바깥 사물들이 들이 닥쳐서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이러한 경공부를 통해서 마음은 깨끗하게 맑아지고 천리는 환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경공부의 목적은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보존하는(居人欲存天理)'데 있다고 볼 수 있다. 行의 주체에 대한 마음을 '기르는' 공부는 맹자의 '寡欲說'을 이어 받았다. 이러한 정이의 行의 주체로서 마음에 대한 경공부는 '行'과 관련된 공부이기 때문에, 그의 知先行後說이란 전제에서 보면 '知'에서 '行'으로 이행하는데 관련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르는 공부의 대상은 마음 뿐만 아니라 마음과 관련되어 있는 '意志'라든가 '氣'의 공부에까지 미치고 있다. 정이는 "氣를 이끄는 것은 의지에 있고 의지를 기르는 것은 마음을 곧게 하는데 있다."고 말하고, 氣를 기르는 공부인 '養氣'공부를 가장 중점적으로 말하면서 기는 '義'와 '理'로써 길러야 한다고 하여 '養氣' 공부설을 자연스럽게 '集義工夫'설과 연결시키고 있다. 따라서 기르는 공부의 보다 적극적이고 풍부한 내용은 集義공부에서 다뤄지고 있으며, 이 集義공부에 의해서 비로소 그의 敬공부설은 보다 완전한 내용과 체계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공부과정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우선 知의 주체로서 마음을 주된 공부 대상으로 여기는 居敬공부는 주로 실천성을 담보로 할 수 있는 '理一之理'의 인식에 이르는 과정과 연관되며, 行의 주체로서 마음을 공부 대상으로 여기는 기르는 공부는 주로 '理一之理'의 인식이 行으로 이행되는 과정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居敬공부의 주된 내용을 지의 주체인 마음을 한곳에 오로지 하여 항상 깨어있어서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집의공부의 주된 내용은 義와 理로써 浩然之氣를 기르며 이를 바탕으로 옳은 것에 대한 심념과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도덕적 용기를 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성리학에 있어서 공부론의 기본적인 내용이 되었으며, 그에 의해 敬 공부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경은 흙덩이처럼 혼자 않아서 귀로 듣는 바가 없고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며 심에 생각하는 바가 없는 뒤에는 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두려워하고 삼가는 것이 감히 방종하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곧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마치 두려움이 있는 것과 같다. 항상 이러하면 기상이 스스로 다르니, 이 심을 보존해야만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은 흙덩이와 같이 홀로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감각 기관과 심의 기능이 정지한 것도 아니다. 절대자에게 대하는 것처럼 두려워하여 氣가 흐르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몸과 마음이 함께 움츠러든다. "경은 만사의 휴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이 일에 따라 전일하고 두려워하여 방일하지 않을 뿐"이다. 경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자연의 리에 따라 행동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경은 밭을 처음 경작할 때 밭에 물을 대는 일과 같다." 그러나 경은 하나의 사물에 대응할 때의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사물에 대응할 때에도 대응하지 않을 때에도 끊임없이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은 끊임없이 지속하는 것이고 처음과 끝이 일관된 것이다. 또 지속해야 하며 일관해야 하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 보면 모든 사물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고, 또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경'은 하나의 일에 한정 될 수 없고 한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또 한 순간에 한정 할 수도 없다. '경'은 동정을 관통하는 것이고 관통해야만 하는 것이다.

주체인 심의 존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경'이고 사물에 대응하여 내면의 인격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 역시 '경'이다. 전자는 정적이고 후자는 동적이다. '경'은 동과 정을 관통하는 것이고 관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의 심성을 부단히 수양해 나가야할 뿐만 아니라, 지식도 끊임없이 확충하여 이성적인 자각을 고양시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정신수양과 格物窮理는 사람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주는 것으로서, 역시 하나의 수양방법이다. 왜냐하면 성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지식을 학습하고 축적하는 목적이란 더 높고 더 보편적인 이성의 입장에서 도덕 법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지 만물의 가장 근본적인 법칙을 장악하는 것이며, 개별사물의 이치로부터 보편적인 천리를 인식하는 데까지 상승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는 敬의 내용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하였다.

옷매를 바르게 하고, 표정을 엄숙히 가지며, 상제를 대하듯하며, 행동을 정중히 하며, 말과 생각을 삼가며, 손님처럼 의젓하게, 제사를 모시듯 경건하게, 일이 동족에 있는데 서쪽을 생각하지 말며, 일이 둘이라 하여 생각을 두 가지로 하지 말며, 오직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딴 데로 흩어지지 말아야 한다."

이에 근거하여 또한 그는 이러한 경 공부야말로 聖門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것이기에 잠시도 멈출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 공부의 대상은 마음이다. 마음의 넓고 큰 바는 천지와 같고, 텅 비고 밝은 바는 해나 달과 같다. 심의 광대함은 심의 리가 모든 존재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곧 모든 일은 심이 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은 진실로 몸을 주재한다. 그 체는 곧 仁義禮智의 성이요, 그 용은 측은, 수오, 공경, 시비의 정이다. 즉 심은 사람의 몸을 주재하는 것이고, 심의 본체는 성이며, 심의 발동은 정이다. 심은 도덕의 基 이고, 인정의 근원이다. 심은 육체에 내재하고 만물에 감응하여 발동하지만 그 발동은 감응하는 대상에 이끌려 질 수 없고, 모든 事象에 주체로서 작용하여 혼란스러움이 없다. 심은 유일 절대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이면서 두 개가 되지 않으며, 주체가 되고 객체가 되지 않는다. 심은 넓고 크다. 넓고 큰 것은 모든 사물이 심의 소산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심의 리가 모든 존재를 포함하기 때문이요, 심의 기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심의 리가 모든 존재를 포괄하고 심의 작용이 모든 사상을 일관하는 한 심은 보편적이다. 따라서 사람의 심과 천지의 심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천지의 심의 생성의 의지인 것처럼 사람의 심도 생성의 의지이다. 생성의 의지는 仁이다. 심이 도덕의 기체인 것은 사람의 심이 천지의 심처럼 생성의 의지요, 인이기 때문이다. 심의 기능은 양적으로 무한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무한하다. 그것은 심의 기능이 영미한 것으로서 과거를 내장하고 미래를 미루어 알기 때문이고 만가지 리를 내재하고 모든 일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선천적인 도덕이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본심이라고 한다. 본심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려하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양심이다. 부도덕한 일체의 행위는 모두 그 본심을 잃는데서 연유한다. 그러므로 모든 공부는 본심을 보존하여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한다. 맹자의 본심은 바로 사람의 도덕의식과 감정이다. 그래서 맹자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이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의이며, 공경하는 마음은 예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이다. 인·의·예·지는 외부에서부터 나에게 들어온 것이 아니라 원래 나에게 있는 고유한 것으로,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고유하면서 모두 완비되어 있는 마음이란 본심을 말한 것이고 사려나 지각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들은 본심 자체의 도덕원칙의 근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본심은 바로 리이고, 본심의 리는 우주의 리와 동일한 것이다. 실제적인 윤리 속에서 성숙한 사람이라면 모두 자기 나름의 안정적인 양심구도를 지닌다. 개인의 양심과 사회에서 공인하는 도덕 준칙이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은 본심이고, 리는 도덕 준칙이라는 의미로 이해 될 수 있다. 리는 심을 포함하고 심은 리를 포함한다. 심을 포함하지 않은 리는 헛된 리이며, 리를 포함하지 않는 심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리는 정이요, 심은 동이다. 리는 심을 기르고 심은 리를 기른다. 리 없는 심은 空無이며, 심 없는 리는 抽象이다. 따라서 심과 리의 관계를 내외, 정조의 대립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심과 리는 一體不離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존심과 궁리의 노력을 오래도록 쌓아올리면 진리의 소재가 분명하게 된다. 따라서 학문의 방향인 궁리는 앎의 궁극이며, 盡心 역시 앎의 궁극이다. 진심에서 存心을 매개로 하여 窮理에 이르는 방향과 진심에서 궁리를 매개로 하여 知心에 이르는 방향은 모든 공부이고 끝임 없는 수련을 의미한다. 따라서 궁리와 진심은 모두 앎의 궁극이지만, 거기에 이르는데는 실천단계를 통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희는 심의 본체는 리이고 리의 발동은 심이며, 심의 동정과 리의 동정은 일체이고 심과 리는 서로 상대를 포함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심과 리가 일체라는 말은 본래의 상태에서 그러하다는 의미이지 현실에서 일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심을 보존할 수 없다면 리를 궁구할 수 없으며, 리를 궁구할 수 없다면 심을 다 할 수는 없다. 심을 보존하기 위해서 즉 존심하기 위해서는 주일무적하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주일무적은 내재적인 수양방법으로서 主一이란 한 곳에만 쏟는다는 뜻이고, 無適은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한 곳에만 마음을 기울일 뿐이지, 동시에 다른 곳에다가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허튼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마음에 생각을 집중시켜서 생각이 이리 저리로 뻗쳐 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오래도록 수양을 지속해 나가면 저절로 천리에 밝아진다는 것이다.

심의 활동의 규제를 통한 마음의 안녕과 평정 유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려의 혼란과 이러한 혼란을 없애는 일은 오직 마음에 주재자가 있어야 한다. 마음에 아무 주재자가 없다면 마치 빈 그릇과 같아서, 사려와 잡념이 어떤 주재자도 없는 의식 속에 마치 물이 들어오듯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주재자가 있다면 마치 그릇에 액체가 가득히 들어차 있으면 더 이상의 물이 들어올 수 없는 것처럼, 자연히 잡념이 생기지 않는다.

오로지 마음을 敬畏의 상태로 유지시켜 나가기만 한다면 사려의 혼란스러움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주일'이 된다면 동쪽으로 가지 않고 다시 서쪽으로도 가지 않으니, 이와 같다면 단지 '中'일 뿐이다. 이것은 심이 외물에 끌려가지 않고 치우치지도 않는 '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심이 이미 저기에도 행하지 않고 여기에도 행하지 않고 마음속에 현존하는 것이다. 그 때 천리는 명확하게 심에 나타난다. '주일'에 의거한 존심의 방법은 심을 수련하는 것이다. 주희에 있어서 존심의 방법은 '경'이라는 한 글자로 요약 할 수 있다. 사람이 경을 잘 해나가면 그 심은 깊고 고요해지고 거기에 천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거기에는 한 조각의 영위함도 없고, 한 조각의 불영위함도 없다. 경에 의한 존심은 득이와 부득이를 초월한 자연이고 필연이다.

Ⅳ. 文人畵의 美的特性과 性理學

아름다움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아름다움 자체를 일반화 내지는 객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아름다움은 두 가지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주지적 개념으로서의 실재적 아름다움과 윤리적 개념으로서의 도덕적 아름다움이다. 실재적 아름다움이란 주관에 의한 단순한 판단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 면, 색채 및 음향, 공간, 볼륨 따위의 미적 성질을 배열, 결합한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즉 미에 있어서 본래적인 아름다움을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에 도덕적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善에 속하는 것으로서 대상이 척도, 비례, 균형 등과 같은 선의 조건과 합치됨으로써 아름다움이 성립된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미적 직관의 대상성에 관한 개념이며, 미적인 것의 일반적 추상개념을 의미한다. 또한 실재적 아름다움과 도덕적 아름다움은 각각 자연미와 예술미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미적인 대상은 대개 자연미와 예술미로 구별되며, 이 양자는 서로 대립적으로 존재한다. 자연미는 자연계에 있는 그대로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말하며, 곧 자연계의 현상의 미, 풍경이나 생물의 미를 의미한다. 예술미는 인간이나 인생에도 포함될 수 있으며, 사람이 만든 것으로 인생의 현상의 미를 의미한다.

자연미와 예술미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송대 이전의 중국 미학에서는 자연미에 비해 예술미, 즉 도덕적 아름다움이 더욱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역}, [坤卦·文言]에 나오는 "군자는 황색의 치마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곤괘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이 서야 할 이치를 지켜 방자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덕이 그 가운데 있고, 사지에 퍼져서 그 업적은 사업에 나타난다. 이것이 미의 극치이다"라는 말과 {맹자}의 "타고난 성선을 충실히 하면서 광휘가 있는 것을 大라고 한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唐代의 장언원은 그의 畵論에서 "무릇 회화란 교화를 이루고 인륜을 돕고 만물의 신묘한 변화를 궁구하며, 조화의 심원한 섭리를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대 중국에서의 예술이란 곧 상당부분 교육적인 공용을 위해 사용되었고, 도덕적 가치를 선양하는 데 가장 중요한 목적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문인화의 등장과 더불어 이러한 관점에도 중요한 변화가 생겨났다. 즉 예술미와 자연미를 통일시키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물론 여전히 상대적으로 도덕적 가치를 우위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자연미의 영역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미적 추구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것은 송대에 오면 선진 유가 철학이 도가와 불교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선진유가의 실천적 도덕철학은 마침내 도덕 형이상학으로 변모하는 것과 같이 문인화도 무관하지 않다. 즉 성리학의 정신적 바탕이 그림으로 표출되어 문인화의 가장 두드러진 미적 특성으로 나타났다. 성리학이 도덕 형이상학적 이론 체계로써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시도한 것처럼 문인화도 자연미와 예술미를 함께 포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있어서 미적 근거는 이 양자를 함께 포괄한 넓은 의미로서의 道에 있다. 성리학에서의 道는 인간의 정신적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이 설정해 놓은 형이상학적 경지이다. 이러한 정신적 경지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문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인화는 당시 사상가들의 정신적 경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며, 이런 점에서 문인화에 나타나는 미적 특성은 성리학의 太極, 陰陽, 敬 등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문인화에 나타난 두드러진 몇 가지 특성을 성리학의 太極, 陰陽, 敬과 연관시켜서 이러한 성리학적 바탕에서 표현된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분석해 내고 성리학적 이론과 관련시켜 해석을 시도하려 한다. 그래서 본장에서는 Ⅱ장에서 언급한 문인화의 미적 특성인 餘白美, 中和美, 意境美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몇 개의 작품을 가지고 와서 구체적으로 작품 속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미학적 특성이 Ⅲ장에서 설명한 성리학의 개념 틀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를 밝혀내어 연계시켜 보려고 한다.

1. 餘白美와 太極

餘白美는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지만 표현 될 수 없는 대상을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시각적 여운을 살리도록 하는 미적 요소이다. 이것은 그려지지 않은 그림으로서, 작가의 정신적 내면세계를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그려진 부분을 드러나게 하는 절대 주재자로서 표현되어진 미감을 말한다. 곧 여백은 표현 형체를 의지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공간을 구성하여 일체화함으로서 실제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나타내고, 표현형체를 집약하여 함축성을 높인다, 그러므로 여백은 시각적인 집중효과를 유발하고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득 찬 암시적 이미지를 전달하여 외부 공간과의 연결을 의도하는 계속성을 가진다. 이러한 여백의 미적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마화지의 <고목유천도>와 고종의 <봉창수기도>를 들 수 있다.

馬和之의 <古木流泉圖>(도1)는 고목나무의 가지가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그려졌다. 실제 대상을 그리지 않고 작가의 감정이 전적으로 개입되어 대상을 재구성하여 간략하고 집약된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활한 여백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그것을 바라보는 한 마리는 가지에서 쉬고 있다. 물결처럼 뻗어나간 나뭇가지도 여백 속에서 출렁이고, 화면의 대부분은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보는 사람의 무한한 상상력을 유발하게 한다. 또 변각의 암석으로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여백으로 흡수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주위 배경을 그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묘사된 나무와 바위의 규모를 더욱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高宗의 <蓬窓睡起圖>(도2)는 화면의 좌측 아래에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여백으로 인하여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 아래 탁 트인 전경의 호수에 작은 배가 띄워져 있으며, 그 안에 한 사람이 한가로이 앉아 화면에서는 여백으로 비어 있는 아득하고 먼 정신적 경지를 바라본다. 멀리 원경에는 산의 윗부분만 표현하고, 표현된 먼 산은 여백으로 인하여 드러나는데, 이러한 경지는 감상자로 하여금 아득하고 멀리 느껴지게 한다. 이것은 그리지 않는 여백을 화면의 중심부분에 크게 남겨서 그려진 부분들이 그려지지 않는 빈 공간에 의해 살아 오르는 것 같이 보이고, 화면의 대부분을 여백으로 완성시킨 작품이다.

위의 두 작품에서와 같이 화면의 대부분을 여백으로 표현한 것은 문인화가의 정신세계의 내면으로부터 솟아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여백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그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꽉 찬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대상들을 하나의 중심으로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공자가 말하는 '繪事後素'에서 잘 타나난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인 子夏가 '흰 바탕에 채색을 한 것'(素以爲絢)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자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마련된 뒤에 하는 것(繪事後素)이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곧 그림을 그릴 때는 본 바탕(素)이 그림을 그리는 것(繪)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희는 바탕(素)이란 회화의 質이고, 무늬(絢)란 채색으로서 회화의 장식이라고 주석 하였다.

그러므로 素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것으로서 작가의 정신적 내면세계를 이루는 바탕이다. 이것은 비록 표현하고자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대상이므로 여백이라는 그리지 않는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는 독특한 미감이다. 또한 노자도 역시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다. 내부는 텅 비어 있지만 만물을 생성하는 원기는 계속해서 나온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충만한 공간은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형태도 없고 색도 없는 실체 즉 道 또는 無를 그림으로 그려내려고 할 때 여백의 기법인 유한한 현상을 이용하여 무한한 시공의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백은 문인화에 있어서는 작품의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그려진 부분을 드러나게 하는 미적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여백이라는 성장을 의미하는 경향성이 감상자의 내적인 힘을 유발하여 양적으로 무한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한 사상체계를 갖춘다. 이러한 표현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성을 작품을 통해 표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림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위의 작품들에서와 같이 화면의 중심을 여백으로 남겨 둠으로써 여백이 실제 그림의 주체가 되도록 하였다. 이것은 또한 주도하여 만물을 낳고 기르는 우주의 생성원리와 같다. 즉 작가가 추구하는 정신적 경지를 여백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나타나는 모든 실제적 요소들이 분산되지 않고 여백을 통하여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은 여백이 한 화면에 있어서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동화되는 所以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성리학에서 우주 만물의 근원으로서 모든 운동 변화의 궁극적 중심으로 작용하는 태극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가 힘차게 날아가는 곳, 그리고 나뭇가지가 꿈틀거리며 뻗어나가는 곳은 여백으로 남겨져 있으며, 이것은 곧 작가의 정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으로서 운동의 중심과 생명의 근원인 태극의 세계이다. 배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 역시 그림으로 그려질 수 없는 여백의 세계이며, 궁극적으로는 태극을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표출된 미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극은 아무런 형상도 없고 그 자체로는 어떠한 운동이나 변화도 없는 無와 같으나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태극은 실유로서 곧 理와 氣의 근거로서 존재한다. 주희는 태극은 명칭을 초월한 궁극적 존재이고, 형체를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한 無와 같은 존재라고 본다. 그리하여 태극을 "천지 만물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리"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태극과 리는 동일한 것이다. 천지에 대해서 말하면 태극은 천지에 내재하고, 만물에 대해서 말하면 태극은 만물 각각에 내재한다. 또한 無極은 리가 무형이라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太極은 리가 음양·오행의 근원이라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 세계의 운동은 태극의 추동으로부터 말미암으며, 태극은 陰陽二氣의 통일체가 되어서 모든 운동을 초월한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형이상학적 우주관이며, 문인화에 있어서는 여백을 통해 그 정신이 표현되었다.

송대 문인화에 나타난 여백은 작품에 있어서 생명력을 부여하고 작가와 대상과의 내면적 일치의 근거가 된다. 이것은 이른바 "천지 사이에는 理와 氣가 있으니, 리는 형이상의 道이자 사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다"라는 말과 관련이 깊다. 즉 태극의 절대적인 주체적 원리가 문인화의 여백으로 표현되어 독특한 미감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하고자 해도 표현할 수 없는 태극을 여백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있어서 주체가 되어서 감상자로 하여금 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한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나타난 여백의 특성은 우주만물의 근원이고 주도자의 표준이 되어 표현하려고 해도 표현할 수 없는 무형상의 소이연자인 태극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며, 이로 인해 여백은 문인화의 가장 독특한 미적 특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2. 中和美와 陰陽

餘白美는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지만 표현 될 수 없는 대상을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시각적 여운을 살리도록 하는 미적 요소이다. 이것은 그려지지 않은 그림으로서, 작가의 정신적 내면세계를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그려진 부분을 드러나게 하는 절대 주재자로서 표현되어진 미감을 말한다. 곧 여백은 표현 형체를 의지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공간을 구성하여 일체화함으로서 실제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나타내고, 표현형체를 집약하여 함축성을 높인다, 그러므로 여백은 시각적인 집중효과를 유발하고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득 찬 암시적 이미지를 전달하여 외부 공간과의 연결을 의도하는 계속성을 가진다. 이러한 여백의 미적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마화지의 <고목유천도>와 고종의 <봉창수기도>를 들 수 있다.

馬和之의 <古木流泉圖>(도1)는 고목나무의 가지가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그려졌다. 실제 대상을 그리지 않고 작가의 감정이 전적으로 개입되어 대상을 재구성하여 간략하고 집약된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활한 여백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그것을 바라보는 한 마리는 가지에서 쉬고 있다. 물결처럼 뻗어나간 나뭇가지도 여백 속에서 출렁이고, 화면의 대부분은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보는 사람의 무한한 상상력을 유발하게 한다. 또 변각의 암석으로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여백으로 흡수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주위 배경을 그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묘사된 나무와 바위의 규모를 더욱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高宗의 <蓬窓睡起圖>(도2)는 화면의 좌측 아래에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여백으로 인하여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 아래 탁 트인 전경의 호수에 작은 배가 띄워져 있으며, 그 안에 한 사람이 한가로이 앉아 화면에서는 여백으로 비어 있는 아득하고 먼 정신적 경지를 바라본다. 멀리 원경에는 산의 윗부분만 표현하고, 표현된 먼 산은 여백으로 인하여 드러나는데, 이러한 경지는 감상자로 하여금 아득하고 멀리 느껴지게 한다. 이것은 그리지 않는 여백을 화면의 중심부분에 크게 남겨서 그려진 부분들이 그려지지 않는 빈 공간에 의해 살아 오르는 것 같이 보이고, 화면의 대부분을 여백으로 완성시킨 작품이다.

위의 두 작품에서와 같이 화면의 대부분을 여백으로 표현한 것은 문인화가의 정신세계의 내면으로부터 솟아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여백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그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꽉 찬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대상들을 하나의 중심으로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공자가 말하는 '繪事後素'에서 잘 타나난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인 子夏가 '흰 바탕에 채색을 한 것'(素以爲絢)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자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마련된 뒤에 하는 것(繪事後素)이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곧 그림을 그릴 때는 본 바탕(素)이 그림을 그리는 것(繪)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희는 바탕(素)이란 회화의 質이고, 무늬(絢)란 채색으로서 회화의 장식이라고 주석 하였다.

그러므로 素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것으로서 작가의 정신적 내면세계를 이루는 바탕이다. 이것은 비록 표현하고자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대상이므로 여백이라는 그리지 않는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는 독특한 미감이다. 또한 노자도 역시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다. 내부는 텅 비어 있지만 만물을 생성하는 원기는 계속해서 나온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충만한 공간은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형태도 없고 색도 없는 실체 즉 道 또는 無를 그림으로 그려내려고 할 때 여백의 기법인 유한한 현상을 이용하여 무한한 시공의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백은 문인화에 있어서는 작품의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그려진 부분을 드러나게 하는 미적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여백이라는 성장을 의미하는 경향성이 감상자의 내적인 힘을 유발하여 양적으로 무한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한 사상체계를 갖춘다. 이러한 표현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성을 작품을 통해 표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림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위의 작품들에서와 같이 화면의 중심을 여백으로 남겨 둠으로써 여백이 실제 그림의 주체가 되도록 하였다. 이것은 또한 주도하여 만물을 낳고 기르는 우주의 생성원리와 같다. 즉 작가가 추구하는 정신적 경지를 여백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나타나는 모든 실제적 요소들이 분산되지 않고 여백을 통하여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은 여백이 한 화면에 있어서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동화되는 所以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성리학에서 우주 만물의 근원으로서 모든 운동 변화의 궁극적 중심으로 작용하는 태극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가 힘차게 날아가는 곳, 그리고 나뭇가지가 꿈틀거리며 뻗어나가는 곳은 여백으로 남겨져 있으며, 이것은 곧 작가의 정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으로서 운동의 중심과 생명의 근원인 태극의 세계이다. 배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 역시 그림으로 그려질 수 없는 여백의 세계이며, 궁극적으로는 태극을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표출된 미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극은 아무런 형상도 없고 그 자체로는 어떠한 운동이나 변화도 없는 無와 같으나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태극은 실유로서 곧 理와 氣의 근거로서 존재한다. 주희는 태극은 명칭을 초월한 궁극적 존재이고, 형체를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한 無와 같은 존재라고 본다. 그리하여 태극을 "천지 만물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리"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태극과 리는 동일한 것이다. 천지에 대해서 말하면 태극은 천지에 내재하고, 만물에 대해서 말하면 태극은 만물 각각에 내재한다. 또한 無極은 리가 무형이라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太極은 리가 음양·오행의 근원이라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 세계의 운동은 태극의 추동으로부터 말미암으며, 태극은 陰陽二氣의 통일체가 되어서 모든 운동을 초월한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형이상학적 우주관이며, 문인화에 있어서는 여백을 통해 그 정신이 표현되었다.

송대 문인화에 나타난 여백은 작품에 있어서 생명력을 부여하고 작가와 대상과의 내면적 일치의 근거가 된다. 이것은 이른바 "천지 사이에는 理와 氣가 있으니, 리는 형이상의 道이자 사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다"라는 말과 관련이 깊다. 즉 태극의 절대적인 주체적 원리가 문인화의 여백으로 표현되어 독특한 미감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하고자 해도 표현할 수 없는 태극을 여백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있어서 주체가 되어서 감상자로 하여금 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한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나타난 여백의 특성은 우주만물의 근원이고 주도자의 표준이 되어 표현하려고 해도 표현할 수 없는 무형상의 소이연자인 태극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며, 이로 인해 여백은 문인화의 가장 독특한 미적 특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3. 意境美와 敬

의경미는 작가의 학문과 인격 수양이 오래도록 쌓인 후 그러한 수양의 경지가 작품에 나타나는 미적 요소이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이것은 흔히 예술적 경지를 표현하는 단계인 生·熟·生중에서 마지막 生의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법의 테두리 속에서 그 법을 익히고 거기에 능숙해진 그 나머지, 곧 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운필과 표현기법으로서 법을 초월한 경지에서 표현되는 미감을 말한다. 이것은 곧 공자가 말한 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이며, 비록 과정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자가 추구한 逍遙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의경미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작가의 정신적 내면세계가 작품 속에 잠재되어 감상자로 하여금 독특한 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경지가 미적 특성으로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馬遠의 <山經春行圖>와 米 의 <春山瑞松圖>를 들 수 있다. 馬遠의 <山徑春行圖>(도5)는 그 양식에 있어서 시. 서. 화 삼절이 갖는 문인사대부의 格을 갖추었으며, 세련되게 그려진 두 가지의 수양버들 가지 끝에 한 마리는 앉아 있고, 그 앞에 날고 있는 한 마리의 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은 더욱 여유가 있어 무심한 마음을 나타내 보인다. 또 나뭇가지의 가는 선은 북종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인 구륵법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그림에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그 미감에서 文氣 즉, 書卷氣가 넘치는 호방함이 감도는 작품이다. 특히 여백을 많이 남김으로 해서 광활한 공간을 느낄 수 있으며 반면에 작품에 나타난 정확하고 섬세한 필치는 응집력의 요체로서 시간적 노련성을 성취하고 있다.

米 의 <春山瑞松圖>(도6)는 水墨點染의 화법으로 옛사람의 화풍에 구속됨이 없이 자연 현상의 본질 정신을 추구한 작품이다. 이와 같이 수묵기법은 주관적 의경의 표현을 중요시하므로 실재 자연의 색상을 포기하고 신운을 중시하였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나타나는 수묵기법의 특색은 자연체험을 거치지 않고 작가의 정신적 의식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바탕에 근거하여 멀리 보이는 구름에 덮인 산과 연기에 쌓인 소나무, 그 밑에 한가로이 그려진 정자는 작가의 의식 속에서 저절로 분출된 노련성을 갖고 있다. 또한 필법이 정갈하고 그 색이 신묘하며 속기를 벗어난 의경미의 표상체는 법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도의 무적 초월에서 오는 것이라 하겠다. 무심하게 찍은 것 같은 붓 터치는 먼 산봉우리를 만들고, 크고 작은 점으로 이루어진 먹의 강약은 감상자로 하여금 우거진 숲을 연상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은 從心의 경지는 技의 시간적 훈련과 수양을 통하여 작가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와야만 가능한 것이다.

위의 두 작품에서와 같은 이러한 예술적 표현은 문인화가의 정신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표상의 본질을 담은 후에야 자신도 모르게 휘두르는 붓 아래 저절로 그 모습이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마음이 붓보다 앞서 있어야 한다(意在筆先)'는 말의 참된 의미이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나타나는 의경미는 작가의 정신적 함양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미적 특징은 표현기법과 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운필 그 자체에도 구속되지 않는 저절로 그러함을 통하여 현현되는 미감이다. 이처럼 표현기법이나 운필에 구애받지 않는 그림은 전통적으로 逸格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왔다. 이것은 唐代의 朱景玄이 처음 사용한 말인데, 이후 그림을 神, 妙, 能, 逸의 四格으로 품평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다가 宋代에 이르러 黃休復은 이 사격의 순서를 새롭게 배열하였는데, 맨 끝에 놓여있던 일격을 맨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이후 常法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마음으로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표현하는 일격이 중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동시에 직업화와 문인화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도 작용하였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의경미를 표현하는 이러한 일격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작가의 마음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의재필선'에서 말하는 마음(생각, 意)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그리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이러한 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칫 의경미가 단지 작가나 감상자의 주관적인 미감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와 감상자의 마음이 각각 다르다면 당연히 느끼는 미감도 다를 것이며, 결국 객관적인 미적 특징을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경미가 일반성을 가진 공통의 미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가나 감상자의 마음이 객관적인 어떤 기준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 때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道'이다. '도'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것이지만 누구나 학문을 닦고 수양에 힘쓰면 직접 체득할 수 있는 우주만물의 원리이다. 이런 점에서 문인화의 의경미는 공자가 말한 '從心所欲不踰矩'의 철학사상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끊임없는 수양과 공부를 통하여 어느 순간 豁然貫通하게 되고, 이 때 비로소 모든 법을 버리더라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아무런 거리낌없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바로 단순하면서도 의경미가 넘치는 그림이 된다. 그러므로 의경미는 끊임없는 자기 수양이 전제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성리학의 敬공부가 철학적 배경으로 깔려 있다. 모든 표현기법을 숙달하고 능숙하게 운용한 다음 붓을 놀리는 데 기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경공부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여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敬은 고대 유가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으나 二程과 주희 등 성리학자들에 의해 가장 중요한 수양방법으로 인식되었으며,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경은 일찍이 {周易}에서 "경으로 안을 곧게 하고, 의로움으로 밖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다. 정이는 유가 전통가운데 경에 관한 사상을 중시하였다. "의관을 근엄하게 바로하고 시선을 높게 가져 간다면, 그런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경의 상태가 갖추어질 것이다."라고 말했고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면, 사악함이 곧 없어질 것이다."라고 했고 "용모에 조심하고 사려를 가진런히 하면 자연이 경이 생긴다."고 했으며, "달리 방법이 없다. 오직 경제엄숙 하기만 하면 마음은 한결같은 상태가 될 것이다. 한결같은 상태가 되면 그릇되거나 편벽되는 잘못이 저절로 없어진다. 이것은 오직 오랫동안 함양하기만 하면 천리가 자연스럽게 분명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주희에게서 경공부는 인식의 주체로서 심에 대한 공부와 실천의 주체로서 심에 대한 공부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경공부의 근거는 심과 리에 있다. 따라서 공부의 중심 과제는 심과 리이다. 그는 심의 본체는 리이고 리의 발동은 심이며, 심의 동정과 리의 동정은 일체이고 심과 리는 서로 상대를 포함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심과 리가 일체라는 말은 본래의 상태에서 그러하다는 의미이지 현실에서 일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심을 보존할 수 없다면 리를 궁구할 수 없으며, 리를 궁구할 수 없다면 심을 다 할 수는 없다. 심을 보존하기 위해서, 즉 존심하기 위해서는 主一無適하고 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주일무적은 내재적인 수양방법으로서 主一이란 한 곳에만 쏟는다는 뜻이고, 無適은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한 곳에만 마음을 기울일 뿐이지, 동시에 다른 곳에다가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허튼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마음에 생각을 집중시켜서 생각이 이리 저리로 뻗쳐 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오래도록 수양을 지속해 나가면 저절로 천리에 밝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련방법으로 인한 그들의 정신적 경지는 문인화의 독특한 미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수양과 도덕 실천이 일치가 되어 그들의 사상이 작품을 통해 표출되어 정신적 내면세계의 완성으로 교화되었다. 그러므로 감상자로 하여금 의경미를 느끼게 한다. 이것은 그들이 억지로 표현해 내고자 한 것도 아니고, 의도된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작품에 임했던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송대에 문인화를 그린 사람들은 이러한 敬 공부를 중요시하여 그 속에 침잠된 사람들이며, 또한 그러한 敬 공부에 심취한 학자들에 의해 문인화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즉 문인화에 나타난 이들의 내면적 정신세계인 敬사상이 더욱 발전하게 되어 송대 문인화의 독특한 미적 특성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신적 수양과 지적 학문을 통하여 從心所欲不踰矩하는 경지가 도덕 실천에까지 승화되어 그들이 그린 그림 속에 저절로 현현되어 문인화로 발전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Ⅴ. 結 論

일반적으로 문인화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규정되어 왔다. 첫째, 문인들이 餘技로 그린 그림, 둘째, 시·서·화가 겸비된 남종화 계열의 그림, 셋째, 유·불·도 사상이 합일되어 나타나는 그림, 넷째, 작가의 心意를 자연의 사물에 의탁한 寫意 위주의 그림, 이 네 가지를 종합해 보면 각기 나름대로 문인화의 특징을 넓은 의미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지나치게 외연을 넓게 설정함으로써 사실상 그 중의 어느 것도 문인화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지는 못하고 그 일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성리학의 가치체계와 그 정신적 경지를 표현하기 위한 그림'이라는 보다 엄격한 의미로 문인화의 개념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문인화가 송대 철학사상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송대 철학 사상이 문인화에 미친 영향은 당시 문인사대부들에 의하여 그려진 문인화 작품을 통하여 나타난다. 이러한 정신은 시대적 사조에 맞추어 출현한 수묵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묵은 그들 지식인들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으며, 또한 그들의 내면적 사상과 일치하여 문인화를 더욱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신적 사상체계는 함축적인 문인정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인정신은 송대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그러한 사상적 바탕이 된 성리학은 기존의 유·불·도 사상을 융합하고, 또한 자신들의 철학사상에 맞추어 새로운 예술사상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송대 성리학자들의 철학사상이 당시 문인사대부들에 의하여 그려진 문인화 작품에 나타나는 미감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여백미와 중화미, 그리고 의경미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인화의 미적 특성은 결국 성리학적 사상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송대에 들어서면서 무질서한 사회를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사회로 바꾸기 위하여 위로는 天理에 준거한 도덕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하고, 현실의 정권유지를 합리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으로서 성리학이 등장하였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문인사대부 계층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대부 계층이 곧 성리학자들이었으며, 그들이 회화에서 자신들의 정신적 경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군자화를 주로 그려내고 또 그들의 정신적 바탕과 일치하는 수묵을 사용함으로써 문인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더욱이 종이의 원활한 보급에 힘입어 화지가 일반화됨에 따라 필묵의 다양한 기법들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사상에 부합하는 사군자를 많이 그림으로써 그들의 사상적 체계를 문인화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학문적 풍토가 완전히 성리학으로 통일되었고, 이에 따라 문인화의 정신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였다. 구체적으로도 모든 예술은 원대와 마찬가지로 복고주의적인 사조에 휩쓸렸다. 이런 영향으로 명대의 문인화는 자아 발생의 정서적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후 계몽주의 사상이 시작되어 서구의 문물이 서서히 유입되고, 사회적으로는 신문화운동이 일어나서 농민의 자유상품 생산이 고조되고 시민경제가 움트기 시작하였다. 공업 방면에 있어서도 수출 등이 활발해졌으며, 그로 인하여 문인화도 시대적 사상체계에 부응하여 엄격한 의미에서의 문인화, 즉 성리학의 문인정신은 차츰 쇠퇴해지고 새로운 문인화풍의 형태가 시작됨으로써 문인화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출현한 화가들이 금릉팔괴와 양주팔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그림은 정통 문인화의 사상적인 성리학의 내적정신은 사라졌으나, 명대 유민화가들의 그 자유분방한 화풍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문인화의 정신적 바탕은 전통적 유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도가와 불가의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를 수용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성리학에 근거한 문인정신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당시 성리학자들의 정신적 내면세계가 문인화를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시의 지식인들이며, 또한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린 문인화는 당시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성리학적 개념들은 바로 太極, 陰陽, 敬 등이다. 그러면 이런 개념들이 문인화의 미적 특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태극은 명칭을 초월한 궁극적 존재이고, 형체를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한 寂然不動 感而遂通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천지에 대해서 말하면 천지에 내재하고, 만물에 대해서 말하면 만물에 내재한다. 태극은 음양·오행의 근원이며 천지만물의 리를 합쳐서 하나로 이름한 것이다. 태극은 음양·오행의 조화의 법칙이 되고, 사물을 생하게 하는 근원이 된다. 모든 물질세계의 운동은 태극의 추동으로 말미암으며, 음양이기의 통일체가 되어 모든 운동을 초월한다. 이러한 절대적인 주체적 원리가 태극이다. 그러므로 문인화에 나타난 여백은 우주만물의 근원이고 주도자의 표준이 되어 표현하려고 해도 표현할 수 없는 무형상인 태극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 있어서도 주제가 되어 대상을 존재하게 하는 바탕이 되며 또한 작품에 나타난 대상이 動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마치 살아있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조화는 음양의 기가 운동, 변화하는 근본적인 방향이며, 하나로 통일되어 나타난다. 조화롭기 때문에 천지만물은 질서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만물을 화생시킬 수 있다. 음기가 지나치면 사물의 운동은 정지되고, 양기가 지나치면 사물은 지나치게 성장하게 된다. 즉 음이 성하면 양으로 돌아가고, 양이 성하면 음으로 돌아가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어야 비로소 천지 사계절에 음양 소장이 조화의 질서를 이루게 된다. 이는 문인화에 있어서는 객체와 작가의 감정을 잘 제어하고 융합하여 일체로 된 느낌을 주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나타난 주체와 객체의 동화는 문인화가 추구한 미적 대상과 작자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敬은 성인이 되는 수양방법으로서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공부 방법이다. 이러한 공부에는 인식의 주체로서 심에 대한 공부와 실천의 주체로서 심에 대한 공부로 나뉘어 볼 수 있지만, 경은 인식과 실천을 동시에 추구한 송대 성리학자들의 학문 방법으로서 궁극적으로는 豁然貫通하며 마음이 가는 데로 행하여도 禮에 벗어남이 없는 공자가 말한 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이다. 이러한 종심의 경지는 문인화에 있어서는 生·熟·生가운데 마지막 生의 경지를 말한다. 곧 작품에 있어서 표현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운필 그 자체에도 구속되지 않은 저절로 그러함을 통하여 현현되는 생의 경지를 말한다.

이와 같이 문인화에 나타난 철학적 바탕은 당시 성리학자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인화는 성리학이 낳은 회화장르이며, 송대 성리학의 사상이 집약되어 작품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문인화는 전문적인 직업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고, 송대 지식인들 곧 성리학자들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문인 사대부들에 의하여 그려진 그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인화는 작품에 나타나는 표현이나 기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잠재된 작가의 철학적 바탕 위에서 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인화는 작가의 내면적 수양과 도덕적 형이상학의 바탕이 없이는 진정한 문인화가 될 수 없다.

위대한 예술가의 예술정신과 표현능력은 안팎이 서로 제대로 수양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특히 문인화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인화는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어 고도의 정신적 바탕 위에서 기법이나 기교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인화는 대상을 숭배하고 대상에 몰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도의 정신적 기반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작가의 인격과 수양이 작품을 통해 표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