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평 및 작가노트

2021년 16회-개인전 평문-추상과 형상, 동양과 서양을 넘어선 새로운 미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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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4회 작성일 23-03-2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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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형상, 동양과 서양을 넘어선 새로운 미의 창조

-[주역] 그림, 화역畵易의 업그레이드


음력 정초를 맞아 현동서화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한 켠에 정돈된 그림을 보고 이번에 전시될 현동 사공홍주 선생의 작품이라는 것을 대번 알았다. 그러나 첫눈에 느껴진 그의 작품은 나에게 큰 ‘낯설음’을 주었다. 도대체 이 작품들의 어떤 점이 나를 순간 혼란에 빠뜨린걸까? 현동 사공홍주 선생은 [주역]의 괘효를 주제로 이번까지 세 차례의 작품전을 연다. 그동안의 작품에 대해 나는 충분히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나는 [주역]을 전공하였고, 현동 사공홍주 선생은 미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것이 우리 둘을 연결하는 끈이다. 

그런데 이 낯선 이질감이라니……. 이윽고 현동 사공홍주 선생과 작품에 대해 대화를 하며 다시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난 그것이 낯설음이 아닌 ‘경외감’이란 것을 알았다. 확실히 미학적 경외였다. 그의 작품을 연이어서 본 나로서는 이 작품이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음을 느꼈다.

이제 내가 느낀 현동 사공홍주 선생의 작품을 몇 글자로 구체적으로 논하려 한다. 현동 선생의 작품은 서예이고 서예 중에서도 문인화지만, 그것을 이미 탈피하였다. 작품을 보면 서양화적 기풍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도형의 나열과 서양화의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도형이라면 디자인에 불과하고, 재료의 차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도구의 차이일 따름이다. 훌륭한 디자인은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도구의 차이를 무시하고 [주역]을 예술화한다는 것은 점과 선, 그리고 면의 나열이다. 그림이 단순하게 보일지라도 의미는 복잡하다. 서예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글자는 한 ‘일一’이라는 글자이다. 이 글자는 붓을 단순히 옆으로 긋는 행위일 따름이지만, 여느 복잡한 글자에 비해 엄청나게 공력이 드는 글자이다. 어느 분야이건 단순한 것이 가장 힘들다. 이 작품은 그 단순한 점‧선‧면을 예술적으로 승화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입체적이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면 뿐만 아니라 상하사방의 측면에도 예술의 혼이 담긴 것을 알아야 한다. 작품에 사용된 색상은 먹이 아니라 서양화에서 쓰는 물감으로 색을 조합하였다. 아! 그런데 필치는 서예와 동양화의 멋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동서양의 기법을 모두 사용했지만, 동서양의 기법을 탈피한 것이다. 감상자들은 단순한 오방색을 나열했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 색깔에도 농묵의 차이가 있으며, 작품의 가장 근본적 배경이 되는 캔버스, 즉 화포畫布는 서양적이면서도 동양의 천이나 비단결의 감성을 그대로 전한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현동 선생이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작품에 담는 심수상응心手相應의 경지에 있음은 이미 알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그리는 동안 엄청난 심리적 고뇌가 있음을 나에게 토로하였다. 그 고뇌의 깊이를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나조차 예술가의 고뇌를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다. 

[주역]은 기본적으로 점 치는 책이다. 단, 운명이 정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열어 간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주역]이 동양 사상의 전반에 퍼졌다. 그러기에 자신의 목표와 이를 이루기 위한 공부를 중시한다. 이들 작품은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며, 또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작가의 바람과 감상자의 바람을 동시에 담았다. 

[주역]에서는 끊임없이 낳고 낳음, 즉 생생불식生生不息을 강하게 주장한다. 예술의 세계는 바로 끊임없이 창조하는 작품에 있다. 여기에 생동生動이 있고 기운氣韻이 있다. 이 작품은 간단하면서도 쉽다.(簡易) 동양화나 문인화라면 있어야 할 화제畫題나 낙관조차 없다. 그 속에 새로운 예술적 경지와 미의 창조를 보여 준다. 이것이 작가만의 작품 세계이며, 감상자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예술 작품의 의미를 넘어 인생과 운명, 아름다움과 행복, 창조의 신세계를 열어서 보여 준다. 


2019년 2월 

퇴계가 노닐던 안동 도산 근처에서

예술을 경외하는 철학박사 이기훈이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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