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4회-개인전 평문-우보천리牛步千里, 동양미학의 정점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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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牛步千里, 동양미학의 정점을 그리다.
- 현동 사공홍주 선생의 14회 개인전을 맞이하며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등골을 타고 흐르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생경하리만치 거칠고 낯선,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익숙하고 편안한 필선은 내가 지금까지 알아 온 사람의 그림이 맞는가 싶다가도 오랫동안 축적된 힘이 화산이 폭발하듯 한 순간에 터져 나온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런 작품들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흐름에 따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미 예정된 결실이었음을.
현동 사공홍주 선생은 쉼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역동적인 사람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항상 무언가 새로운 일을 만들어간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도 결코 한 자리에 안주하거나 멈추는 법이 없다. 이와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 그는 태산처럼 한 자리에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변하는데도 굳건하게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돌아보면 항상 그대로인 사람. 나에게 비친 현동 선생은 이런 역설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주역]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는 이런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가 <역易>의 본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주역]은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함축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 변화의 원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역유태극易有太極이라. 변역變易과 불역不易의 아이러니야말로 [주역]이 초월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근거이다. 구체적인 형상이나 언어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주역]은 구체적인 형상을 벗어난 초월적 상(象外之象)으로서 괘卦를 드러낸다. 이로써 하나의 괘에 변變과 불변不變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주역]은 자연과 인간, 세계를 아우르는 최고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반영하면서 수많은 철학사상가들의 연구주제가 되었다. 아울러 예술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연속된, 혹은 단절된 여섯 개의 선으로 구성된 64개의 괘상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조형적 미감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누구도 괘상 자체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이는 각각의 괘가 지니고 있는 의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본질로의 환원, 혹은 회귀이다. 이는 작가의 의식을 포함한 모든 외부적인 요인을 철저히 배제하고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식의 표현으로 대상 자체의 순수한 미적 가치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외형적 형태만을 보면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사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두꺼운 평붓을 사용하여 아무 변화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는 필선은 평면의 효과를 극대화하지만 이는 작가의 의식을 배제하고 대상의 미적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가의 의식을 무한히 확장하여 세계(자연)의 본질과 연결시키고 나아가 진眞·선善·미美가 서로 합일되는 동양미학의 궁극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먹의 농담을 활용하여 필선을 중첩시키고, 번짐 효과를 극대화하여 상호연관성과 변화의 필연적 흐름을 드러낸다. 때로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여백餘白의 배치와 획을 세우는 파격을 통해 평면을 입체적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각 괘상이 함유하고 있는 본질적 의미(내용)를 강조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저절로 그 기운氣韻에 동화되도록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작가만의 전유물도 아니요, 감상자의 특권도 아니다. 작품을 통해 작가와 감상자의 기운이 공명을 일으키고, 그 파장이 울림이 되어 공간을 가득 채울 때 비로소 이해와 공감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파격적이고 새로운 시도인 만큼 때로 감상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으나 마음을 열고 전체를 관조한다면 공간의 울림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현동 사공홍주 선생의 예술혼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여 진정한 빛을 발하는 전시회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보현산普賢山 소담재素淡齋에서
황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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