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평 및 작가노트

2016년 14회_개인전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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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23-03-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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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작품전을 준비하면서-


지금까지의 작업을 정리해보면,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했던 재료나 표현기법을 사용해서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한 시기였다. 하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재료나 표현기법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 때부터 나의 고민은 무엇을 작품으로 그려 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에서 2000년 이후에는 하나의 중심 주제를 정해 놓고 그 주제를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치중하였다. 그 후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새로운 변곡점에 서게 되었다. 이번 제14회 작품전은 기존의 형식과 틀을 벗어버리고 지금까지의 공부를 바탕으로 5000년 동양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역周易]의 내용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세계에 대한 기본적 이해방식에서 자연철학으로, 다시 도덕철학으로 발전해 온 동양 최고의 경전經傳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주역]은 천지만물의 운행과 역사의 변화 원리를 밝혀서 인간의 임무를 다하고자 하는 성인들의 도덕철학을 담은 책이다. 또한 이 책은 인간의 길·흉사를 예언하는 기본서로도 널리 알려져 왔다. 그 기본 구성을 살펴보면 태극太極(우주)이 양의兩義(陰·陽)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太陽·小陽·小陰·太陰)을 낳고, 사상은 다시 팔괘八卦(乾·兌·離·震·巽·坎·艮·坤)의 작용으로 세분화 되는데, 이 팔괘만으로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어서 이것을 겹쳐서 64괘를 만들고, 각각의 괘마다 특정한 의미와 지위를 부여하였으며, 또한 괘를 이루는 384개의 효爻마다 따로 효사爻辭를 붙여 세밀한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주역]에서는 우주만물의 운행은 간단하고 쉬우며(簡易), 항상 멈추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늘 변하고 바뀌는데(變易), 그 변화에 대한 법칙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不易)는 기본 관점을 제시한다. 특정한 공간 속에서는 어떤 관계이든 서로 연결되면 통通한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그것을 ‘기운氣韻’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기운’을 화두로 삼아 이번 제14회 개인전을 준비하였고, [주역]의 괘상卦象을 통하여 좋은 ‘기운’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별다른 의미가 없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어떤 계기로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적어도 자신에게만큼은 그 물건이 정말로 귀중하고 가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뿐만 아니라 감상자에게 있어서도 때로 한 장의 그림이 심미적인 가치를 넘어서기도 한다. 하나의 그림 속에 자신의 꿈과 희망을 담고, 행복한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작품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넘어서 너무나도 소중하고 진실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 또한 이로 인하여 좋은 ‘기운’이 서로 연결되고, 자신이 바라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작품으로써 훌륭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제14회 작품전은 심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운행과 변화를 전체 주제로 잡고 있다. 이것을 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주역]의 64괘를 그림으로 형상화 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염원하는 좋은 ‘기운’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전체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화면 구성을 위해 먹의 농도를 담채와 농채 두 가지로만 처리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흑백 이외의 채색을 사용함으로써 회화적 미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특히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하는 바탕으로서 음과 양을 재구성하여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조화되도록 하고, 문文과 질質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화제畵題는 괘상卦象을 따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고, 단순화하여 괘이름만 썼으며, 화제의 자형은 한문서체의 원형인 전서체篆書體로, 시제는 한글을 사용하여 조형적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아무쪼록 이번 전시회를 관람하는 모든 분들에게 생동의 기운이 퍼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6년 3월 명제헌明齊軒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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